곤지암바위와 신립장군
옛날 이 마을 뒷산 끝자락에 연못이 있는 곳에 바위가 있다고 하여 마을 이름에 뫼 곤(崑) 못 지(池) 바위 암(巖) 자를 써서 곤지암이라고 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유래에서 곤지암역에서 출발하는 오늘의 코스를 곤지암길, 풀어서 곤지바위길이라 한 것이죠. 곤지암 역에서 멀지 않은 곤지암 초등학교 정문 옆에 찾아가면 실제로 곤지암바위를 볼 수 있습니다. 코스를 이탈해서 갔다 오면 왕복 3km 정도 됩니다. 가 보면 곤지암바위에 400년 노거수 향나무가 자라고 있고 바위 가운데가 쩍 갈라져 있는데, 신립장군의 원혼이 벼락으로 내리쳐 쩍 갈라졌다고 하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기도 하죠. 신립장군의 묘도 곤지암역에서 멀지 않습니다. 곤지암 역 2번 출구 나와 앞에 보이는 신대리 야산에 묻혀 있습니다. 곤지암 3리 마을회관을 지나 앵자봉 가는 등산로를 따라가면 묘소에 이를 수 있습니다.
오늘 걷는 곤지바위길 코스는 곤지암역에서 출발 - 곤지암읍사무소 - 게이트볼장 - 남산애견장 - 우리농원 - 하오향1교 - 봉현정 - 부처재고개 - 신촌리 - 동원대 - 넓고개 - 이천의병전적비 - 삼리정 - 신둔도예촌역에서 종료됩니다.
참조
곤지암역 - 봉현정
곤지암역 2번 출구 나와 두리번거려도 봉화길 안내판이나 리본, 스티커는 안 보이네요. 출발점인데 길안내가 좀 아쉽습니다. 동원대 쪽으로 코스가 진행되는 것이니까 우측으로 좀 따라가 보면 버스정류장 옆에 봉화길 제4길 곤지바위길 안내판이 보입니다. 뭔가 2% 부족한 첫인상이네요. 이후에는 요소요소에 리본과 스티커가 친절하게 붙어 있습니다.
곤지암읍사무소를 지나 계속 큰길 따라 직진입니다.
도로공사 현장으로 혼잡스러운 구간에 길 건너가,
게이트볼장 앞으로 지나가면,
봉현리 들어가는 교통표지판이 보이죠. 바로 우틀, 큰길에서 벗어나,
눈이 녹아 질척거리는 들길을 따라 들어가면 마치 애견훈련장으로 들어가는 듯,
길이 곤지암천 둑방길로 연결되네요. 난간 쇠기둥에 붙은 스티커 화살표 보고 둑방길 따라 왼쪽으로 진행합니다.
심심한 우공들이 사람 구경하러 슬슬 울타리로 다가오네요. 그 큰 머리를 난간 사이로 밀어내 사람구경을 하는 건 좋은데 집어넣은 머리는 어찌 빼내려고 그럴까. 농원을 지나오면서 보니 우리농원이라는 간판이 세워져 있습니다.
다리 밑을 통과 데크길 따라갑니다. 오른쪽에 곤지암천을 계속 따라가는 자전거길이네요.
개울을 건너가는 이 지점에도 스티커 하나 없어 두리번거리게 되던데요.
춥지 않은 오후의 들판 풍경입니다.
그늘 속에 졸고 있는 농기계들,
토종닭을 키우는 어느 길가 집에 함께 키우는 거위들이 은근히 공격적인데요, 그 옆에 오히려 누렁이는 순둥이입니다.
인터체인지를 지나온 이 지점에서 왼쪽 전봇대에 리본을 보고 직진, 요양원 가는 방향으로 직진, 한참을 가다가 후속 리본이 안 보여 되돌아왔습니다. 왕복 1킬로 정도 알바를 했네요. 우측으로 길 건너가야 하는 자리입니다. 전봇대에 스티커(화살표) 하나 부착해 주면 좋겠는데요.
봉현리 봉현정
앞에 보이는 마을은 봉현 1리, 따라 가는 실개천은 웃개마을천입니다.
노거수들 사이에 정자가 보입니다.
봉현정입니다. 수령 500년을 넘을 것 같은 노거수 느티나무인데 아무런 설명이 없네요.
봉현정 양쪽에 하나씩, 노거수가 둘입니다. 봉현리의 수호목으로 보이는데요.
스탬프 찍고 파란 벤치에 앉아 잠시 쉬어갑니다.
다시 출발, 종점인 신둔도예촌역까지 4.5km 남은 지점에서 다리를 건너갑니다.
봉현육교를 넘어가면 고개입니다. 밑으로는 장호원 이천 간 국도에 차량들이 질주하고 있습니다.
부처재고개
폭설로 눈이 쌓여 고갯길에 차량통행은 통제되고 있습니다. 차단기 밑으로 통과,
응달져 눈이 녹지 않은 부처재고개를 올라가고 있습니다. 고갯마루까지 500 여 미터쯤 되겠네요. 역방향에서 올라오는 고개 입구에도 차단기가 내려져 있습니다. 고개를 내려가면 신촌리, 마을회관 앞을 지나 마을을 벗어나 큰길로 나오면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동원대학교가 보입니다.
동원대 캠퍼스
동원대 정문을 통과해 들어가면,
캠퍼스 내 버스정류장에 잠실역, 동서울 가는 버스들과 광주공영버스들이 운행대기로 여러 대가 몰려
주차되어 있어 마치 터미널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캠퍼스를 벗어나 우측으로 내려가면,
넓고개로 가는 이정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넓고개 이천의병전적비
넓고개길은 응달이어서 고갯마루까지 눈이 그대로 쌓여 있지만, 고개를 넘어 양지바른 내리막길엔 다 녹았습니다.
이천의병전적비입니다.
이천 의병들이 이곳 광현(넓고개)에서 일본군 토벌대를 괴멸시켰다는 승전보가 새겨져 있습니다.
의병장 김하락, 김태원, 구연영, 조성학, 신용희 등이 이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그 수가 2000여 명에 달하여 을미의병의 첫 전승을 거두고 그 후 6개월에 걸쳐 장렬히 싸웠으나 김하락과 조성학은 영남에서, 김태원과 신용희는 호남에서 각각 전사하였고 구연영은 이천에서 장렬히 순국하였다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어차피 죽는다, 그러나 일본의 노예가 되어 사느니 자유민으로 싸우다 죽는 것이 훨씬 낫다'라고 당당히 외치는 절규를 런던 데일리 메일 특파원이 취재 보도한 일부입니다.
김하락의 진중일기에 보면, '일본군대가 대궐로 넘어 들어와 국모를 살해하였으니 지극히 통분한 일이었다.. (중략).. 11월 15일에 대궐 안에 들어와 임금님의 머리를 강제로 깎고, 이어서 조신들의 머리도 깎으며, 병졸들이 칼을 가지고 도성을 횡행하며 도성 안 사람들이 늑삭을 당하여 예의의 나라가 어찌 이리 부패될 줄이야 기했겠는가..'라고 울분을 토로하며 의병봉기를 결심하게 된 배경을 일기에 적고 있습니다.
진중일기에 의병의 첫 전승을 거둔 광현전투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네요. 그러나 일본군이 반격해 온 2차 전투인 이현전투에서의 패전을 기록하였습니다.
스탬프 찍고,
삼리정 - 신둔도예촌역
마을에 노거수 느티나무 두 그루가 눈에 뜨입니다.
신둔리인가 했는데 이 마을은 삼리인가 보네요. 정자 이름이 삼리정입니다.
마을의 수호목에 숨은 이야기가 있는지 기웃거려 보았지만 아무런 설명도 없습니다.
도예촌임을 상징하는 조형물을 설치한 신둔도예촌역에서 오늘의 코스를 종료합니다.
오늘 걸은 거리는 gps상으로 12.9km입니다.
글번호: 1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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