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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치울 마을

 

아치울 마을은 여류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이 말년에 머무르며 작품 활동을 하신 마을입니다. 당시만 해도 아차산 자락에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만 가득했던 아늑하고 조용한 전원마을이었었죠. 2011년에 작고하셨으니까 선생님이 가신 지도 벌써 10년 가까이 되는데 아치울에 선생님이 머무르던 노란 집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해서 오늘 찾아가 보았습니다. 검색은 안되지만 노란 집이니까 찾기 쉽지 않을까 하고 아치울 마을을 무작정 찾아갔죠. 구리 둘레길 옛 코스에 박완서 문학길이라 해서 빠지지 않고 포함될 만도 한데? 웬일인지 옛 코스 1코스에서도 벗어나 있고, 2코스에서도 벗어나 있네요. 아치울 마을 입구에 자전거 거치시켜 놓고 마을길(아치울길) 따라 걸어 들어갑니다.

 

아치울 마을 입구 이정표
아치울 마을, 전원마을에 들어선 건물들,

 

아치울 마을 입구에 이정표에는 아치울길이 구리둘레길 1코스로 되어 있네요. 옛 1코스라는 것이겠죠. 코스 안내가 구코스, 신코스, 좀 혼란스럽습니다. 아치울길 따라 마을로 들어갑니다. 마을 입구에서 보면 이젠 전원마을이라 하기엔 좀 그렇죠. 많이 변했습니다. 길 따라 들어가면서 길가에 신축 중인 공사장도 몇 군데 보입니다.

 

마을길 전신주에 붙은 구리둘레길 안내 스티커, 화살표, 직진, 뒤로는 아차산,

구리 둘레길 안내 표시도 자주 보입니다.

 

벽면에 노란색 대비 회색으로 멋진 카페, 아치울,

노란 집만 두리번거리면서 찾는데, 안 보이네요.

 

허름한 시멘트 담벼락, 가스관, 가스계량기, 낡은 집 창문,

동네엔 멋진 전원주택들도 많지만

이렇게 색 바랜 세월에 시간이 멈춘 듯한 골목길로 돌아나가기도 하고, 

 

집 벽체가 모두 노란 집, 파란 대문(철문), 왼쪽에 주차 회색 승용차 1, 흰 승용차 1, 오른쪽에 주차 검은 승용차 1, 전신줄에 매달린 cctv

그러다 노란 집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예감이 좋습니다.

 

텃밭에 심은 실파,

선생님이 손수 가꾸기도 했다던 텃밭도 집 앞에 있고,

 

집 앞 개울, 물이 별로 없어요,

물소리 경쾌한 개울도 집 앞에 흐르고...

틀림없이 이 노란 집이 선생님이 사시던 집 같은데 아무런 안내표시도 없습니다. 주위에 아무도 지나가지 않아

주민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조금 서성이다 골목 따라 아차산 자락 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 봅니다. 

 

흰 벽에 늘어진 능소화 줄기, 꽃송이,

내리는 이슬비를 맞으며 촉촉이 피어 있는 능소화, 

 

담벼락을 뒤덮은 담쟁이 능소화, 꽃 몇송이,

좀 더 올라가니 이 집은 능소화가 담쟁이와 함께 담벼락을 다 덮어버렸네요.

 

박완서님의 단편 마지막 임금, 소개 안내판, 등산로 안내,

아차산 등산로 입구에 선생님의 작품을 소개하는 안내판을 세워 놓았습니다.

집 앞이 아니고 등산로 입구에다..

 

안전사고 주의 경고문, 금줄,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아차산 4보루로 올라가는 산길인데

태풍에 따른 강풍과 집중호우로 안전사고가 우려되오니 등산 활동을 자제하시고 안전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습니다. 며칠 전 태풍 경보 때 붙여 놓은 것인가

보네요. 더 가봐야 산길이니까 아무래도 아까 그 노란 집으로 되돌아가야 하겠는데요. 

 

마을 끝 전신주에 붙은 구리둘레길 안내 스티커, 아래에는 주차된 흰색 승용차,

마을 끝에도 구리 둘레길 안내표시가 전신주에 선명하게 붙어 있습니다.

마침 차에서 내리는 동네 주민인 듯한 두(2)분이 있어 물어보았더니

그 노란 집이 틀림없네요. 그 집에 가족분들이 거주해서 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하는군요. 

 

박완서 선생님 노란 집

 

다시 돌아온 박완서 노란집

다시 노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가족분들이 살고 있어서 프라이버시를 감안해 박완서 관련 어떤 표시도 하지 않았나 보다 그렇게 이해가 됩니다.

 

노란집 벽체와 창문

당초에는, 구리시에서 아치울 마을을 박완서 문학마을로 조성하고, 문학관, 문학공원, 문학 둘레길도 조성하는

방안으로 추진하려 했었는데, 

 

노란집, 파란 대문(철문), 에스원(발간 바탕에 흰글씨로 cctv 작동중 SECOM, 파란 우편함,

그런 구상에 대하여 가족 측에서 정중하게 거절하였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생전에 아치울 마을을 사랑하셨어요.

마을 이름이 박완서 마을로 바뀌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실 것 같아요. 어머니는 마을에 어떤 표식을 남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고 마을 이름이나 버스 정류장에 어머니의 이름을 넣는 것도 좋아하지 않으셨다"라고 하면서

"보통 사람들 속에 살고 싶어 하셨고 책으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고 싶어 하셨다"며 "문학마을 조성은 어머니가

살아계셨을 때도 원하지 않던 일"이라고 큰 따님 호원숙(수필가)씨가 말했다고 하는군요. 그렇게 유족 측에서

사업을 만류하는 의사표시를 하였다고 합니다. <참조 동아일보 2011년 8월 6일, "박완서 마을, 개명 고맙지만..

어머니는 아치울 이름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랬군요. 박완서 선생님 다움에 그 따님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을길 풍경

 

푸른 대추알&#44; 대추나무&#44;
돌아나오는 길 대추나무에 사랑 걸렸네

 

땡감
봉선화
도라지꽃
이름 모르는 하얀꽃

 

어느새 노란 가을 국화꽃이 피었어요. 

 

길가 어느 물류회사 목재울타리에 걸린 소품

구리 가는 길

 

아치울에서 나와 아차산로를 따라 광개토태왕 광장으로 우산 쓰고 걸어갑니다.

키 큰 메타세쿼이아 가로수들이 한 줄로 도열한 멋진 길입니다.

 

자전거갈 겸용

한 다리 마을 입구를 지나서도 메타세쿼이아 길은 계속 이어집니다.

 

광개토태왕 광장

 

구리둘레길 옛 2코스 시작점인 광개토태왕 광장입니다. 비문에는, 영락 6년, 태왕 23세 때에 아리수(한강)를 건너

백제를 공격하여 아신왕의 항복을 받고 아단성(아차산성)을 비롯한 한강유역의 58 성과 700촌을 회복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태왕은 하늘이 돌보지 않아 39세에 세상을 떠나셨다고 태왕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돌아오는 길, 길가 화원에는 벌써 가을 국화꽃이 가득합니다. 

 

비에 촉촉히 젖어 싱싱한 가을 국화

아치울 마을을 한 바퀴 돌아 광개토태왕 광장까지 걸어 왕복한 거리는 7km,

아치울 마을까지 자전거 라이딩 거리는 9km(feat. 도마스 펠리체 700-25c)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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