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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코스, 인천둘레길 12코스는 성창포길로 되어 있어서 성창포가 어디 있는지, 성창포에 얽힌 옛이야기들이 있겠지 하고 궁금했었죠. 그런데 코스를 다 돌아봐도 어디에도 성창포에 대한 안내나 설명문을 찾아볼 수 없네요. 인천의 옛 지명이라고 하긴 하는데 인천 사시는 분들이야 잘 아시겠지만, 잘 모르는 분들도 많겠죠. 특히 12코스 안내에 성창포길이라고 되어 있을 만큼 오늘의 코스 어디엔가 관련이 많을 텐데, 없네요. 못 보고 지나친 것 같지는 않은데.. 그래서 검색을 해 보았습니다.

 

2015년 1월 16일 자 인천일보연중계획 '조선초기부터 군사교통중심지'를 보면, "세종실록 지리지에 인천군 서쪽 15리에 제물량이 있고 성창포(城倉浦)에 수군만호(萬戶)가 있어 지킨다라고 돼 있고, 이후 기록인 신 증동국여지승람에도 수군만호가 지킨다는 기록으로 보아 일찍부터 해안 방어의 중요지역이었다. 성창포는 지금의 인천항 일대까지 아우르는 이름이었는데 이름 그대로 군량미를 보관했던 군수기지 창고로 본다면 근처의 여러 진지 중 그 역할이 특출했다. 인천지역에 서구의 원창동(元倉洞), 동구의 만석동(萬石洞) 등의 곡식 창고 등과 관련된 지명이 나타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진 않다"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동인천역 앞에 세워져 있는 경인철도 기공식 사진이 흥미롭습니다. 출발점인 제물포역이 아니라 우각현(도원역 부근)에서 기공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궁금하네요.

 

1899년 9월 18일 제물포역에서 노량진역까지 33km의 경인선이 완공되면서 도로로 12시간 걸리던 것을 1시간 30분대로 줄이면서 서울과 인천이 1일 생활권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죠. 현재의 전철로는 58분 걸리네요. 당시 기차의 이름은 모갈(Mogul) 1호였는데 거물 또는 거인의 뜻이었지만 사람들은 발음이 낯설어 그냥 불을 때서 가는 기차라 하여 화차 또는 화륜거라 불렀다고 합니다. 여기에 전시된 기차 조형물은 당시 운행하던 증기기관차 모갈 1호를 실물 크기로 제작, 기적소리와 증기를 연출할 수 있다고 하네요.

 

동인천역에서 11코스를 마무리하고 바로 뒤돌아서 중앙시장 입구로 가면 바닥에 12코스 출발점 표시인 원형 안내판이 그려져 있습니다. 시장은 전통혼수거리여서 그런지 사람들이 그렇게 북적대지 않고 있었습니다. 시장통 한가운데를 지나 배다리사거리까지 직진입니다. 이후 개항로 따라가다 답동성당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답동성당은 국가지정 사적 287호입니다. 1889년 프랑스 외방선교회 빌렘(J. Wlihelm) 신부가 초대 본당 신부로 부임하면서 답동 언덕에 성당의 정초식을 갖고 이후 코스트(E. Coste) 신부의 설계로 1897년 고딕양식의 건물을 세웠습니다. 현재의 건물은 1937년 기존 건물의 외곽을 벽돌로 쌓아 올리는 개축공사를 완공하면서 로마네스크양식으로 변형된 것이라고 하네요.

 

신포시장은 사람들로 북적대고 있었습니다. 먹거리시장이라 그렇겠죠.

 

고미술품 경매장 앞 조각상입니다.

 

홍예문(虹霓門)은 무지개처럼 아름다운 문이라는 뜻입니다. 인천시내의 남북간 교통불편을 해소하기 위하여 1908년에 준공, 처음에는 혈문(血門)이라 불리기도 하였다네요. 당시 일본 지계(地界)나 항구에서 만석동으로 가려면 서부 해안선을 따라 돌아가야 했으므로 송학동 마루턱을 깎아 길을 만들고 화강석으로 쌓아 홍예문을 함께 만들었다고 하는데 아치터널구조로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그 당시 일본의 토목공법 및 재료에 대한 좋은 사료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왼쪽 계단으로 올라 터널 위로 넘어갔는데, 갓길도 없는 차로를 따라 터널 안으로 통과하는 사람들이 많네요.

 

동화마을입니다.

 

차이나타운

 

삼국지 벽화거리

 

자유공원은 한국 최초의 서구식 공원으로 미영로청일 각국 공사가 서명하고 공원을 만들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각국공원, 만국공원이라 부르다가, 잠시 서공원으로 호칭했으나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으로 이곳이 맥아더 장군 지휘아래 가장 먼저 상륙한 사적지임을 기념하여 1957년 개천절을 기해 맥아더 장군 동상을 세우고 자유공원이라 개칭하였다고 표지석에 새겨져 있습니다. 

 

자유공원 맥아더 장군 동상

 

늠름한 모습이죠

 

멀리 포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장군과 그 휘하 용감한 유엔군 장병들이 우리와 자유를 위해서 이곳에서 취한 행동을 우리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공산주의의 유독한 침투에 대한 최후 투쟁에 승리를 거둘 때까지 전쟁에는 승리에 대신할 것이 없더라고 말 한 분 역시 장군이었다는 사실을 영원히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라고 동상건립문 말미에 새겨져 있습니다. 

 

인천상륙작전 상황을 입체적으로 동판에 새겨놓았습니다.

 

각국지계라고 새겨진 조계석(租界石)입니다. 인천에는 1883년 일본전관조계를 시작으로 12월 청국전관조계, 다음 해인 1884년 10월에 각국전관조계가 설치되었는데, 조계석은 조계의 경계를 나타내주는 표지석으로 각 조계의 경계지점에 세웠다고 하네요. 각국조계석에는 각국지계, 조선지계라는 명문이 있어 인천의 각국 조계와 조선인의 마을이 맞닿는 개항장의 외곽지점에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 각국지계는 2007년 제물포구락부 보수공사 중에 발견되었습니다.

 

신포로 23번 길(89), 이곳은 1883년 인천개항 후 일본 제1은행의 부산지점 인천출장소로 개설되어 1888년 인천지점으로 승격, 초기에는 해관 통관세 업무를 취급하였습니다. 1911년 조선은행 인천지점, 1950년 한국은행 인천지점으로 사용되다가 이후 조달청 인천사무소, 법원등기소로 활용되다가 2010년 인천개항박물관으로 개관되었다고 하는군요. 개관 09:00-18:00, 입장 마감은 17:30, 단 4월-11월 토/일 10:00-21:00,

 

그런데 박물관 앞에 인력거가 한 대 묶여 있습니다.

 

짜장면을 한자로는 작장면(炸醬麵), 중국어로는 차오장멘이라고 하는군요,

 

짜장면의 역사와 종류 알아볼까요.

 

오늘의 목적지 인천역인데요. 역사 안에는 화장실이 없나 보네요. 교통카드 대고 들어가 두리번거리고 찾아보면, 건물 밖 40m로 안내되고 있습니다. 건물밖 간이화장실 이용이라니, 모르면 들락날락 불편하죠. 1호선 인천역의 역사성, 상징성이 큰데도 급행도 정차하지 않고 패스, 여러 가지로 위상이 동인천역에 밀려나고 있습니다.

 

인천역에서 오늘의 트레일링을 마치고 11+12코스 걸은 거리는 11.8km, 그중 12 코스만은 6.7km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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