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문산역에서 내려, 길 건너, 한진아파트 1차 앞 정류장에서, 임진각행 버스 58번을 탈까, 선유리행 11번을 타고 선유 삼거리 출발점에서 오늘의 코스를 시작할까, 버스 도착시간을 따져보는 사이, 공교롭게도 11번 바로 뒤 58번이 뒤따라 도착하여 순간에 임진각행 58번에 탑승하였습니다. 임진각까지 먼 거리는 아니지만 운천리, 장산리, 마정리 마을길, 산길, 농로를 굽이굽이 돌면서 태워주고 내려주고 하면서 가니 25분이 걸리네요. 그래도 마을버스를 타고 이 동네 저 동네 마을길을 돌아보는 농촌 풍경이 봄 햇볕에 따사롭습니다. 임진각(정류장)에서 하차. 걷기 출발하여 사진 몇 장 찍으며 두리번거리다 의주길 안내표시와 리본을 발견, 그대로 따라갔으나 도무지 스탬프함은 안 보여 자유의 다리 입구에서 기념품 판매 부스에 물어보니까 근처에 있었는데 언제부터 없어졌는지는 잘 모르지만 관광안내소 쪽으로 가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조금 혼란스럽지만 대형주차장으로 내려가 관광안내소 주변을 둘러보아도 스탬프함은 안 보여서 또 물어보니까 관광안내소 사무실내로 들어오라고 하면서 직원이 서랍에서 꺼내 주어 스탬프를 찍을 수 있었습니다. 찍긴 찍었지만 당혹스럽습니다. 관광안내소 직원이 몇 시까지 근무하는지를 물어볼 걸 그랬네요. 선유리 쪽에서 출발하여 임진각에 늦게 들어왔다면, 그런데 관광안내소 직원이 퇴근하였다면, 스탬프를 찍지 못하고 돌아갈 수밖에 없는 황당한 일이 생길 수도 있잖아요. 오늘 코스는 평화누리길과 함께해서 평화누리길 안내 리본을 보고 따라가도 되겠습니다.

 

임진각과 평화누리 공원을 다 둘러보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겠죠. 자유의 다리 입구 녹슨 기관차가 있는 곳까지만 둘러보고 돌아와 화석정 방향으로 출발하기로 하였습니다.

 

6.25 한국전쟁 50주년을 맞아 세운 조각작품 '새천년의 장'입니다. 안내석에 새겨진 건립 기를 그대로 옮기면, "찢기고 패인 민족 적대의 상처를 남긴 지 쉰 해, 망각의 강물을 넘어 잊힐 때도 되었건만 점점이 돋아나는 상흔과 아픔은 오히려 해가 거듭할수록 더 해가고, 두고 온 산하는 더욱 그리워진다. 이제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는 때에

 

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 피맺힌 절규와 함께 스러져간 눈 감지 못한 원혼과 이산의 고통 속에 오늘도 편한 잠 이루지 못하는 이들의 멍든 가슴을 달래고, 이를 통일로 승화시켜 민족의 하나 됨을 기원하는 새 천년 평화의 장으로 나가고자 여기 온 국민의 염원을 담아 새 천년 기념 조형물을 세운다. 

 

이 만남의 장을 축으로 하여 경의선이 이어지고 경원선이 이어지고 백두산이 열리고 민족의 기슴이 열리고

하나 되어,

 

이념의 사슬을 끊고 더불어 함께 나아갈 수 있는 민족 공존의 기틀이 만들어 지기를 우리 모두 기원하자."

2000년 6월 25일 6.25 50주년 기념사업회 위원장 (예) 대장 백선엽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

 

통일의 염원을 담은 수많은 띠지

 

저 다리를 넘어가면 도라산역이죠.

 

평화의 종각을 둘러보고 돌아내려 가 임진강역 앞에서 길 건너 화석정 가는 코스로 진입합니다.

 

마정리 보호수. 수령 460년 된 느티나무가 있는 마을을 지나 장산으로 가게 되는데, 장산은 의주길의 마지막 산으로

전망대에서 초평도가 보인다고 하네요. 전망대로 가는 갈림길에서 임진리 마을 입구까지는 내리막 비포장길입니다.

 

저 녀석 돌담 위 백구는 순둥이, 살살 짖네요.

저 아래 임진강변 임진나루의 뱃사공 이야기가 재밌네요. 하루는 다른 곳의 뱃사공이 임진나루의 뱃사공을 시험하기

위하여 양반으로 변장하고 나타났지만 지혜로운 임진나루 뱃사공은 너의 수염이 한쪽으로 구부러 졌고 노를 젓느라

고개가 돌아간 것을 보니 너도 나와 같은 뱃놈이구나 하면서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는 재밌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율곡은 임진나루에 있는 화석정에 틈이 날 때마다 들기름에 젖은 걸레로 마루와 기둥을 닦도록 하였으며 임종 때에 "어려움이 닥치면 열어보라" 하며 봉투를 남겼다고 합니다. 후에 임진왜란(1592)이 일어나 4월 그믐 밤 선조가 파천하는데 폭풍우가 너무 심해 한 치 앞을 볼 수 없을 지경이었을 때 호종하던 이항복이 율곡이 남긴 봉서를 열어보니

 

화석정에 불을 지르라고 쓰여 있어서 이에 화석정에 불을 지르니 관솔이 타듯 불길이 올라 나루 근처가 대낮같이 밝아져서 선조 일행이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었다고 합니다. 1593년 환도하면서 다시 이 강에 당도하여 나라와 백성을 위하여 순국한 병사들의 넋을 달래고자 나루터 강변 모래사장에 제물을 차려놓고 위령제를 지냈다고 하네요.

 

의주 파천 당시 달빛조차 없는 4월 그믐밤 폭풍우 속에서 노심초사 고생 끝에 이 나루를 건너게 된 쓰라린 아픔을 기억하고 이 강을 지키고자 목숨 버린 용감한 충신들의 명복을 기원하는 기운데 선조가 통곡하며 하늘의 도움을 받아 이 나루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구나 하였다 하여 신지강(神智江)을 임진강(臨津江)으로 개칭하게 되었다는 일회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화석정은 율곡 이이(1536-1584)가 제자들과 함께 시를 짓고 학문을 논하던 곳입니다. 6.25 때 소실된 것을 1966년 파주의 유림들이 성금을 모아 다시 복원한 것으로 건축양식은 팔작지붕 겹처마에 초익공 형태로 조선시대의 양식을 따랐습니다. 참조 <의주길 이야기 안내판>

 

이이가 8세 때에 화석정에 올라 지은 시를 돌에 새겨놓았는데..

林亭秋己晩 숲 속 정자에 이미 가을이 깊어 드니, 騷客意無窮 시인의 시상이 끝이 없구나,   

 

遠水連川碧 멀리 보이는 물은 하늘에 잇닿아 푸르고, 霜楓向日紅 서리 맞은 단풍은 햇볕을 향해 붉구나, 

 

山吐孤輪月 산 위에는 둥근달이 떠 오르고, 江含萬里風 강은 만리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머금었네,

 

塞鴻何處去 변방의 기러기는 어느 곳으로 날아가는 고, 聲斷暮雲中 울고 가는 소리 저녁 구름 속으로 사라지네...

8세 어린이의 시상이 어른스럽습니다.

 

해가 저물고 있는 임진리 마을,

 

전원풍경입니다.

 

선유리 시장(정류장)에서 트레일링을 마치고, 92번 버스로 문산역으로 이동, 전철로 귀가하였습니다. 오늘 걸은 거리는 15km입니다. 이렇게 하여 의주길 고양 삼송역에서부터 임진각 자유의 다리 입구까지 전 구간을 완주하였습니다. 삼성 헬스(gps)상으로 구간 구간 걸은 거리를 합하니 전구간 걸은 거리는 59.6km 되네요. 자유의 다리 입구에서 임진강을 건너 신의주까지 갈 수 없는 냉엄한 현실에 철책선을 뒤로하고 무거운 발길을 돌리게 되는군요.

 

 

글번호: 484

728x9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