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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10대 대로 중, 한양과 충청, 전라, 경상의 삼남지방을 이었던 1,000리에 달하는 긴 길을 삼남대로라고 했습니다. 조선시대 육로교통의 중심축으로 당시의 대표적인 도보길이라 할 수 있는데 서울 숭례문에서 시작하여 해남 땅끝 마을까지 한반도의 동맥과 같은 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삼남길은 충청, 경상, 전라도(하삼도라고도 했죠)로 가는 삼남대로 중에 남태령에서 안성까지의 경기도 구간을 경기옛길-'삼남길 100km 역사문화탐방로'로 조성하였다고 간략히 소개하고 있는데 오늘은 그중 제1길인 한양관문길(남태령-인덕원)을 찾아 걸었습니다. 남태령옛길->용마로를 지나 계곡길로 내려가 개울바닥 바윗돌들을 밟고 걷다가 나지막한 야산 산길을 돌아내려가면 온온사에 이르게 됩니다. 이어서 과천향교를 둘러보고 과천정부청사 앞길(관문로)을 지나 중앙로->찬우물로로 이어지는 도로변 인도를 걸어 갈현동택지개발현장을 지나게 됩니다. 그리곤, 오늘의 목적지인 인덕원옛터를 찾아가야 되는데 갈현동 택지개발현장이 마구 파헤쳐져 어수선하고 여기저기 가림막을 쳐놓고 길안내표시가 사라지고 안 보이는 데다 빗방울이 흩뿌리기 시작해 코스를 벗어나 큰길(과천대로)로 나가 인덕원역 쪽으로 걸음을 재촉하여 오늘의 트레일링을 마쳤습니다.

 

남태령역 2번 출구 나오면 삼남길 안내표시가 보입니다. 바로 걷기 출발, 남태령 고개에 이르기 전 왼쪽에 정각사 입구인데쉼터에 화장실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남태령 고개입니다. 왼쪽에 해태조각상이 있고 길가에 남태령 표지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 표지석 근처에 스탬프함이 있을 것 같아 한참을 찾아보았지만 스탬프함은 조금 더 내려가 남태령옛길 입구에 세워져 있고 그 안에 삼남길 안내지도(스탬프북)도 비치되어 있습니다.

 

남태령 옛길 입구에 세워져 있는 망루앞에 스탬프함이 있습니다. 삼남길(남태령옛길)은 관악산둘레길 과천구간과 겹치네요.

 

남태령옛길은 한양에서 삼남으로 오가는 도보길이었는데, 과천을 지나 수원, 안성을 거쳐 남으로 내려가거나,

 

반대로 과천에서 이 고개를 넘어 사당동, 동작동, 흑석동을 거쳐 노들나루(노량진)에서 한강을 건너 한양에 이르렀던 길입니다.

 

원래 이 고개는 여우고개(狐峴)로 불리었는데 정조대왕이 부친인 사도세자의 능원으로 행차할 때 이 고개에서 쉬면서 고개 이름을 묻자, 과천현 이방 변 씨가 임금님에게 속된 이름을 아뢸 수 없어 남태령(남행할 때 첫 번째 나오는 큰 고개)이라 아뢴 이후 남태령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남태령 표지석에는 이방이 얼떨결에 남태령이라 아뢰었다고 새겨져 있는데요.

 

과천시 남태령 일원인 이곳 쉼터는 3.1 만세 시위가 있던 장소입니다.

 

한양관문길은 남태령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조선시대 과거를 보러 가던 젊은 선비들이 이 길을 걸었겠고,

 

삼남지방의 풍부한 물산도 이 길을 오갔을 것입니다. 이 길은 또한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영으로 부임하던 길이고, 암행어사 이몽룡이 남원으로 달려간 길이기도 하겠죠.

 

온온사 1.2km 전방, 용마로 끝 지점에 서 있는 이 이정표를 못 보고 지나치면 코스를 이탈하게 됩니다. 이 지점에서 왼쪽의 개울(계곡) 길로 내려가야 합니다.

 

개울 바닥의 바윗돌들을 밟고 걸어가면서 지금은 물이 없어 말라 있지만 여름에 개울(계곡) 물이 불어나면 어찌해야 할지, 우회로로 가야 하나,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가네요.

 

길가에는 진달래꽃이 반겨 맞아주고 있는데,

 

걸어온 계곡, 다시 뒤를 돌아보아도 여름 장마철에 이 길을 걸어도 괜찮을지 염려스럽습니다.

 

산길에 다른 나무들은 새싹이 살포시 나오는 듯한데 이 나무는 무슨 나무인지 벌써 싱그러운 신록입니다.

 

산길을 다 내려와, 왼쪽으로 가면 온온사 가는 길입니다.

 

 

온온사는 절이 아니죠, 공무로 나선 벼슬아치들이 묵었던 객사(客舍)입니다.

 

경관이 아름답고 몸과 마음이 편하다는 온온사에는 정조대왕이 수원의 현륭원에 참배하고 돌아오던 길에 머무르면서 온온사라 이름 짓고 친히 편액을 써 내렸다고 합니다.

 

관악산 등산로 입구의 과천향교입니다.

 

향교는 조선시대 국가에서 설립한 지방교육기관으로 양민이상이면 향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고 하는군요. 명륜당은 강학장소이고 동서재는 기숙사입니다.

 

 

명륜당 뒤 내삼문을 들어서면 제사를 모시는 대성전입니다.

 

이 향교는 태조 7년(1398), 관악산 기슭에 세워졌으나 자주 불이 나고 과거에 오르는 학생도 없는 등 터가 좋지 않다고 여겨 숙종 16년(1690)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하네요.

 

1944년 시흥향교, 과천향교, 안산향교를 통합하여 시흥향교로 하였다가 1996년에 과천향교로 복원하였고,

 

현재의 건물은 1975년에 완전해체하여 복원한 것입니다.

 

김영철(1920-1988)은 경기도 과천면 갈현리에서 태어나 9살 때 스승 김관보에게 줄타기를 배워, 재주가 뛰어나고 총명하여 스승으로부터 줄타기의 모든 것을 학습하여 당대 최고의 명장 이동백, 김창룡, 임방울, 성우향 등 수많은 예인들과 함께 공연을 한 분이시네요. 또한 철현금이라는 악기를 직접 제작하여 연주할 정도로 음악성도 뛰어난 분으로, 197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8호로 줄타기가 지정되면서 초대 인간문화재로 인정된 분이십니다. 김영철 기념비가 있는 이곳 갈현동 공원에는 김승철 중위의 군인정신을 기리는 안내문이 세워져 있습니다. 6.25 전쟁 중, 1950년 7월 2일 이한림 장군이 지휘하던 부대는 이곳 갈현동 부근에서 적의 기습을 받았는데 장군의 부관이었던 김승철 중위가 부대원들이 후퇴할 시간을 벌기 위해 단신으로 적 1개 소대와 맞섰으나 결국 그 자리에서 전사하여 이한림 장군은 이를 잊지 않고 김중위가 전사한 자리에 충혼비를 건립하였다는 안내문입니다. 주변에 충혼비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 우물은 조선 22대 정조대왕이 부왕 사도세자의 능침을 참배하러 가는 길에 마시고 물맛이 좋아 당상의 품계에 상당하는 가자(加資) 우물로 하라고 하였다는 일화가 전해지는 우물이었다고 하는데, 수량이 줄면서 그동안 인근 사유지의 지하수를 유입해 이 우물에 급수를 해 왔으나 최근 소유주의 관정 이전요구에 따라 폐공이 불가피하여 급수를 중단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습니다.

 

갈현동 택지개발 현장을 지나 삼현로로 진입하면서 '길 없음(진입금지)'라는 안내표지가 세워져 있더니 정말로 길이 차단되고 있습니다. 사람은 옆으로 비켜 걸어 나갈 수 있기는 한데 여기까지 길안내 잘 되어오던 이정표, 리본, 겹화살표(부메랑이라고 하네요)들이 사라지고 하나도 안보입니다. 그런데다 빗방울이 흩뿌리기 시작하여 서둘러 왼쪽으로 나가 큰길(과천대로)을 따라 인덕원역 쪽으로 뛰다시피 걸어가 8번 출구에서 오늘의 트레일링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오늘 걸은 거리는 11.7km입니다. 

 

삼남길의 길안내표시 이정표, 리본, 겹화살표(부메랑) 모음입니다. 영문 i 자 필기체 모양의 안내표시는 점(헤드)의 방향이 진행방향입니다. 겹화살표의 오렌지색은 서울에서 멀어지는 진행방향(하행)이고 녹색은 서울에 가까워지는 진행방향(상행)입니다. 진행방향을 색으로 구별해 놓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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