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앟비야의 자전거 탄 풍경 걸어다닌 풍경 402

 

숭실대역 3번 출구로 나와 걷기 출발, 사당로 따라 상현중학교 돌담을 끼고 올라갑니다. 백운고개에서 에코브리지를 건너가 현충원 철망 옆 오솔길을 따라 메모리얼게이트까지 갔다가 돌아내려와, 7코스를 잠시 벗어나 2코스에 진입하였다가 다시 에코브리지를 건너와 7코스에 다시 합류하게 됩니다. 이후 상도중학교 방향으로 내려가면서 고층 아파트촌을 지나 까치산길을 걷게 되는데 키 큰 아카시아와 참나무들이 쭉쭉 뻗어 하늘을 가리고 있는 숲 속 오솔길입니다. 인근 주민들이 많이 나와서 산책을 하고 있네요. 유모차를 밀고 다니는 가족 나들이도 몇몇 보입니다. 동작 충효길에는 여러 이야기가 얽혀있는 이야기 길이기도 하네요.

 

까치산 정자, 기둥에 달린 새집,

까치산 공원의 쉼터, 정자에 새집이 달려 있습니다. 이 지역은 수목이 우거지고 까치가 많아 까치고개라 불렸던 데서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하네요.

 

4각 정자의 기와지붕, 햇빛, 나뭇잎 그림자, 우거진 숲,

이 동네에 얽혀 있는 이름의 유래에는..., 숭실대학교 아래 로타리에서 관악구 봉천동으로 넘어가는 봉천고개는 살피재라고 불렸었는데 높고 험한 데다 숲이 울창하여 도둑이 나타나 길손을 괴롭히기도 하였으므로 고개를 넘는 길손들에게 살펴서 가라고 당부하였다고 한 데서 살피재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고 합니다. 또, 고개는 높고 험하고 백성들의 생활은 고달프고 어려움이 많아 슬프다는 뜻으로 슬피재라 하다가 음이 변하여 살피재가 되었다고도 합니다.

 

올라가는 산길 옆 울타리, 목책, 풀밭에 쏟아지는 햇빛,

'사당이 고개' 이야기도 있습니다. 숭실대에서 사당동 총신대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하는 건데요, 옛날 이 고개 부근에 큰 사당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사당이 고개 옆에는 나무시장이 있었는데 가난한 사람들이 자녀들의 학비 조달을 위해 나무를 해다가 새벽 일찍 이곳에서 팔고 다시 나무를 하러 가던 곳으로 주로 장작 솔개비 등이 매매되었으며 이곳의 나무는 부자들과 일본인들이 사갔다고 하네요.

 

오르막 계단길, 통나무계단, 우측에 안전 로프 난간, 우거진 숲속, 햇빛 파고드는 숲길,

공원 내 산책길은 제법 가파른 계단도 있네요. 그런데, 까치산에 오늘은 까치가 한 마라도 안 보이네요.

 

급경사 오르막, 나무, 침목 계단, 양쪽에 안전 난간, 목재, 우거진 숲, 햇빛 파고드는 계단길, 앞에 남성 1, 계단에 나무 그림자,

백운고개 에코브리지를 건너 현충원 가는 길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현충원 메모리얼 게이트, 목재, 지붕은 태극문양, 왼쪽 푸른 철제 울타리 너머는 현충원, 푸른 하늘, 보안등 하나,

메모리얼 게이트입니다. 국립현충원의 순국선열에 대한 추모 게이트로서 태극기를 형상화하여 게이트의 지붕은 태극문양을, 게이트의 기둥은 건곤감리를 나타낸다고 하네요. 왼쪽의 철망 안쪽으로는 현충원입니다. 동작충효길 2코스는 여기서 살짝 밟아보고 백운고개 에코브리지를 건너 다시 7코스로 합류합니다.

 

둥근 나무 판에 써 놓은 추모의 글, 메모리얼게이트에 수십개 달려 있음,

메모리얼 게이트에 달아놓은 추모의 글들인데 글씨가 잘 안 보입니다.

 

산동네 마을 풍경, 허름한 시멘트 벽, 녹슨 철판 울타리, 파란 스레트 지붕, 그 옆으로 난 가느다란 골목길,

까치산 산동네 마을의 골목길입니다.

 

까치산 키 큰 아카시아 나무 숲

원당고개 이야기입니다. 동작고등학교에서 낙성대역으로 넘어가는 솔밭로 생태다리 아래의 고개를 원당고개라 하였는데, 조선시대 동래 정 씨 문중과 전주 이 씨 문중이 사당 고을을 서로 자기네 땅이라 하여 소송이 붙자 당시 이 고을 원님이 이 고개에 앉아 판결을 내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판결은 반반씩으로 해서 남태령까지는 전주 이 씨가, 동작동 배나무골까지는 동래 정 씨가 소유토록 했다고 합니다. 참조 <동작 충효길 이야기 안내판>

 

구 벨기에영사관 건물&#44; 붉은 벽돌&#44; 2층집&#44; 현재는 남서울 미술관&#44; 앞에는 닫힌 철문&#44;

이 붉은 벽돌 건물의 안내문에는.. 이 건물은 1901년 대한제국과 벨기에 사이에 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후 세워진 벨기에 영사관이다. 1903년에 착공하여 1905년에 완공하였는데 원래는 중구 회현동(현 우리은행 본점 건물 위치)에 있었으나 1970년 도심 재개발사업으로 인해 이곳으로 옮겨졌다. 이 건물은 1919년 벨기에 영사관이 충무로 1가로 이전한 뒤 요코하마 생명보험회사 사옥으로 쓰다가 일본 해군성 무관부 관저로 쓰였다. 광복 후에는 해군 헌병대에서 사용하였다.

 

구 벨기에 영사관 건물 근접사진&#44; 로 앵글&#44; 푸른 하늘&#44; 키 큰 소나무에 가려진 2층 건물&#44;

1970년 상업은행이 이 건물을 사들여 1983년 이곳으로 옮겨와 상업은행(우리은행 전신) 사료관으로 사용하였다. 2004년 9월부터 서울 시립미술관 남서울 분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일본인 건축가 고다마가 설계한 이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2층의 벽돌조 절충식 건물이다. 붉은 벽돌과 화강석을 혼용하여 지었고 건물의 외관은 당시 일반적인 건물과는 달리 비대칭형이다.

 

영사관 건물 근접사진

현관 앞에 있는 두 개의 돌기둥과 발코니에 길게 늘어서 있는 돌기둥들은 고전주의적이다. 전면의 창 부분은 르네상스식 분위기를 띠고 있으며 1, 2층에 설치된 베란다의 기둥들은 이오니아 양식으로 되어 있다. 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미술관은 지금 다음 전시회 준비관계로 18일까지 휴관으로 문이 닫혀있습니다. 

 

동작 충효길 길안내 표시(이정표) 모음입니다. 

 

숭실대역 3번 출구-> 사당로-> 백운고개-> 상현중학교->

상도중학교-> 까치산공원-> 남서울미술관-> 사당역 6번 출구에서 

트레일링을 마친 오늘의 걸은 거리는 9.8km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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