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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초기 명재상이며 청백리의 귀감이신 황희선생의 유적지를 다녀왔습니다. 자는 구부(懼夫), 호는 방촌(尨村), 본관은 장수(長水)로 판강릉대도호부사 군서(君瑞)의 아들로 개성에서 태어나셨는데,

 

고려가 망한 후 두문동에 은거하다 조선 조정의 요청으로 관직에 오르게 됩니다. 고려말기부터 조선초기의 여려 요직을 거치면서 문물의 제도와 개혁에 노력했고,

 

세종연간에는 19년간이나 의정부 최고 관직인 영의정에 재직하면서 세종성세에 큰 업적을 남긴 인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문종 2년(1452)에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자 탄현면 금승리 선영에 예장하고

세종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시호는 익성(翼成)입니다.

 

유적지에는 선생의 유업을 기리기 위하여 세조 1년(1455) 후손들에 의해 건립된 선생의 영당과 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난 후 여생을 보낸 반구정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곳 경모재에서는 지금 다도체험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본래의 영당은 6.25 때 불탔으나 1962년 후손들이 정면 3칸 측면 2칸의 초익공양식의 맞배집으로 복원하였고 영당내부 중앙에 선생의 영정을 모시고 있습니다.

 

앙지대에 오르고 있습니다.

 

바로 옆의 반구정이 지금 수리 중에 있네요. 대신에 앙지대를 사진에 크게 담아보았습니다.

 

유적지 돌담 안으로는 조용하고 평화스러운데 담너머 저쪽에는 삼엄한 철책선이

둘러쳐져 맞닿아 있어 긴장감을 주고 있지만, 그래도 임진강은 유유히 흐르고 있습니다.

 

반구정은 임진강이 내려다보이는 기암절벽 위에 위치하는데 예로부터 갈매기가 많이 모여들어 갈매기를 벗 삼는 정자라는 뜻에서 반구정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하네요.

 

정자내부에는 미수 허목의 반구정기(伴鷗亭記)와 여러 개의 중수기(重修記) 편액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참조 <황희선생유적지 안내문>

 

기념관 앞 등나무에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있습니다.

 

절구방아 같은데요..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쉬고 있습니다.

 

예쁜 나비는 지금 꿀샘을 찾고 있겠지요..

 

방촌기념관 내부에 들어왔습니다.

 

갓끈

 

서각대

 

선생의 절친한 벗인 정건천 선생이, 황희가 송악산 두문동에서 내려감에 그 아쉬움을 자신의 부채에 적은 시, 그대는 청운에 올라 떠나가고(君登靑雲去), 나는 청산을 향해 돌아가네(予望靑山歸) 청운과 청산이 이에 갈라서니(雲山從此別) 눈물이 벽라의를 적시는구나(淚濕碧蘿衣).. <해설 정건천 문집>

 

기념관에는 선생의 업적과 유품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황희선생 묘역을 둘러쳐 감싸고 있는 돌담 뜨락에 낙엽이 쌓여가고 있습니다.

 

나지막한 꽃담이 정겹습니다.

 

봉분 양쪽에 지키고 서있는 문인석

 

묘역은 3단으로 넓게 조성되어 있으며 봉분의 아랫부분에는 화강암으로 둘레석을 둘렀고, 봉분 앞에는 제사를 지내기 위한 상석(床石)과 향로석등의 석물이 있습니다.

 

묘역 아래에는 그의 업적을 기린 사적비가 있고,

 

신도비는 1945년에 세웠습니다. 묘역은 경기도 기념물 제34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참조 <황희선생묘역 안내문> 

 

 

오늘의 라이딩 경로입니다. 시작은 문산역에서 해서 황희선생유적지(반구정)를 둘러보고, 금승리로 내려가 묘역을 돌아보고 다시 문산역으로 돌아와 라이딩을 마치면서 오늘 달린 라이딩 거리는 26km입니다. 헤이리-평화누리길 7코스-반구정-8코스로 이어지는 평화누리길로 달려도 좋은데 문산역에서 시작하면서 오늘의 라이딩은 평화누리길코스와는 다른 길을 달리게 되었습니다. 경로상 12-17 구간은 월롱산업단지-서영대학교-LG디스플레이에 이르는 서영로를 따라 달리는 차로이지만 4차로에 갓길도 넓고 차량통행이 많지 않아 승차감이 부드러운 아스팔트 차로를 달리는 상큼한 라이딩을 즐길 수 있습니다. 7-8 구간은 차량들이 굉음을 내며 과속으로 달리는 자유로에 착오 진입하였다가 돌아 나온 위험한 구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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