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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선 서울대입구역 3번 출구 나와 걷기 출발, 서울대입구를 돌아 관악산공원(관리소 앞) 빨간(스탬프 찍는) 우체통까지 걸어가 보니 2km가 되네요. 관악산 자락을 오르는 둘레길에 접어들면 길가 양쪽에 우스꽝스러운 표정들의 장승(대장군 여장군)들이 도열해 길손을 맞이해 주는 듯해서 오르막길에 잠시 숨을 돌릴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 걸은 5-2코스는 서울대 캠퍼스가 내려다보이는 관악산 자락을 지나면서부터는 관악산 줄기에 있는 삼성산-호암산 자락을  주로 걷게 되는데 이 길을 '숲이 좋은 길'('관악산 도란도란 걷는 길')이라는 정다운 이름을 붙여놓은 것에 정감이 갑니다. 얼마 안 가 삼성산 보덕사 입구입니다.

 

보덕사는 작은 절인데, 범종은 규모가 크네요.

 

보덕사에 대한 안내문이 안 보여서 절의 유래를 알 수가 없는데요. 겉보기에는 대웅전도 작고 요사채도 소박해

보이는 절입니다.

 

삼성산 삼림욕장입니다. 많은 분들이 숲 속 벤치에 앉거나 누워 삼림욕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정말 싱그러운 신록이죠.

 

산림욕 중인 이분들의 벤치 뒤로 청설모 두 마리가 왔다 갔다 하다 도망갔습니다.

 

조금 더 올라가면 호압사 아래에 호암산 산림욕장이 있는데,

 

거기는 나무들이 모두 잣나무라서 지금 여기 삼성산처럼 싱그럽지 않고 숲 속이 어두워 보이지만 가을에는 잣이 영글고 진한 잣향기가 숲 속에 그윽하게 되면 가을향기가 진한 삼림욕이 되겠습니다.

 

이곳 삼성산 성지는 1839년 기해박해 때 새남터에서 군문효수(軍門枭首)의 형을 받고 순교한 성 라우렌시오 앵베르 범 주교와 성 베드로 모방 나 신부, 성 야고보 샤스탕 정 신부의 유해가 안장된 곳입니다. 이들은 1836년 이래 조선에 입국하여 활동하면서 이국적인 외모를 감추기 위하여 상복으로 얼굴을 가리고 신자들을 찾아 복음전파에 힘써왔습니다. 모방 신부는 당시 소년이었던 김대건 안드레아, 최양업 토마, 최방제 프란치스코 등을 선발하여 마카오로 유학을 보내 최초의 조선인 신부를 양성함으로써 조선 천주교회에 큰 업적을 세웠습니다.

 

19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세 성직자는 교우들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 스스로 관가에 나아가 자수하여 신앙을 고백하고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으로 사형을 당하였습니다. 이때 앵베르 주교의 나이 43세, 모방 신부와 샤스탕 신부는 35세였으며 이들의 유해는 20 여일 간 새남터 모래사장에 버려져 있다가 후에 교우들의 노력으로 노고산(서강대 뒷산)에 안장되었고 1843년에 박 바오로 등에 의해 다시 발굴되어 이곳 관악산줄기 삼성산에 안장되었습니다. 그로부터 58년 후 1901년 박 바오로 아들 박순집의 고증으로 유해가 발굴되어 다시 명동성당 지하묘지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세 성직자는 1925년 7월 25일 시복(諡福)되었으며 1970년 봄 오기선 신부에 의해 그동안 아무런 표시도 없이

방치되던 이곳 삼성산이 세 성직자가 매장되었던 곳으로 확인됨에 따라 같은 해 5월 12일 김수환 추기경과

노기남 대주교 및 박순집의 후손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비석을 세우고 축성식(祝聖式)을 가지면서 삼성산

안장터는 성지로서 면모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한국천주교회 200주년인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세 성직자가 시성(諡聖)의 영광에 오르자 이를

기념하여 서울대교구에서 묘지 부근의 땅 1만 6천여 평을 매입, 1989년 명동성당에서 성인 유해를 일부 옮겨와

안치하고 축성식을 가졌습니다.

 

그 후 이곳은 관할 본당인 삼성산 성당에 의해 관리되고 있으며 세 성인을 기념하기 위한  월례미사는 순교일인

매월 21일, 주일 미사는 부활 제2주일부터 제34주일 까지 봉헌되고 있습니다. 참조 <삼성산 성지 안내문>

 

태조는 왕사인 무학대사의 조언으로 조선의 도읍을 한양으로 정하고 궁궐을 짓는 과정에 태조의 꿈속에 어둠 속에서 반은 호랑이이고 반은 모양을 알 수 없는 이상한 괴물이 나타나 눈에 불을 뿜으며 건물을 들이받으려고 하여 군사들로 하여금 화살을 쏘았지만 괴물은 아랑곳하지 않고 여러 차례 짓던 궁궐을 무너트리고 사라졌다고 합니다.

 

태조가 침통한 마음으로 침실에 들었을 때 어디선가 "한양은 비할 데 없이 좋은 도읍지로다"라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한 노인이 있어 무슨 묘안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노인이 손가락을 가리켜 그 노인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호랑이 머리를 한 산봉우리가 한양을 굽어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꿈에서 깬 태조는 무학대사를 불러 말을 전하였고, 무학대사는 호랑이 기세를 누르기 위해 호암산(虎岩山)에 호압사(虎壓寺)를 창건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호압사에는 현재 문화재 8호인 석학사여래부처님이 모셔져 있고 도량 내에 있는 500년 수령을 지닌 두 그루의 보호수는 호압사의 역사를 입증하는 자료이며 호압사를 찾는 모든 이들에게 편안한 쉼터를 마련해 주는 안식처로 이 절은 600년의 세월을 품고 있는 전통사찰입니다. 참조 <호압사 안내문>

 

오늘 서울둘레길5-2코스의 이정표 모음입니다.

서울대입구역->관악산공원입구->보덕사->삼성산 성지->호압사->호압사산책길->석수역에서 오늘의 트레일링을 마무리한

11.5km의 걷기였습니다. 오늘 산길에서 자전거(MTB) 한대 비탈길을 타고 내려가면서 휙 비켜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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