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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역에서 출발, 관음사 가는 길로 올라가면서 관음사를 지나 체련장 까지 계속 가파르게 올라갑니다. 끝나고 보니 오늘 걸은 코스중에 이(관음사-체력장) 구간이 가장 힘든 구간이었습니다. 다음으로 힘든 오르막 구간은 낙성대 거의 다 가서 올라서게되는 조망대에 오르는 구간, 그리고는 짧게 올랐다가 짧게 내려오는 업다운이 몇군데 있지만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았어요. 오늘 비온다는 예보는 없었지만 하늘이 흐리고 잔뜩 찌프리고 있고 언제라도 빗방울이 내릴 듯 내릴 듯한 비구름으로 변해가고 있는데 비올 대비를 아무것도 준비해온 게 없어서 내내 불안한 산행이었지만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았습니다. 고려시대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 장소인 낙성대를 들려보고, 서울대 입구를 지나 관악산공원 입구 정문앞에서 빨간 우체통을 발견하고 다 왔구나 하고 둘레길스탬프를 찍으려고 더듬거리다 보니 그건 진짜 우체통이었습니다. 스탬프를 찍는 빨간 우체통은 정문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오른쪽에 보입니다. 둘이 너무도 비슷하다 하지만 글쎄 그래도 그렇게 잠깐 헷갈릴 수가 있나요..

 

 

관악산은 그 모습이 머리에 갓을 쓰고 있는 모습을 닮아 관악산(冠岳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하죠.

 

 

서울의 대표적인 명산이랄 수 있는 관악산에는 관음사, 낙성대, 삼림욕장, 천주교성지, 호압사 등 둘러볼 만한 역사문화적인 자원이 많습니다.

 

 

숨차서 올라오다보니 관음사는 일단 패스, 산길에서 귀여운 토종 다람쥐 한마리 만났는데요, 그만 숲속으로 사사삭 도망가 꼬리만 조금 보이고 숨어버렸습니다.

 

 

무당골 쉼터입니다.

 

 

조망대입니다. 여기서 1km 조금 더 내려가면 낙성대입니다.

 

 

장군이 태어날 때 하늘에서 이곳에 별이 떨어졌다고 하여 낙성대(落星垈)라고 불리우게 되었습니다.

 

 

장군은 거란의 침략을 막아낸 것을 비롯하여 나라와 백성을 위해 일생을 바쳐, 고려 백성은 장군의 이러한 공적을 찬양하여 장군이 태어난 집터에 삼층석탑을 세웠는데

 

 

석탑은 파손된 부분을 보수하고 1974년 6월 이곳에 기념공원을 조성하고 공원내에 사당을 건립해 영정을 모시면서 봉천동  218번지에 있던 이 탑도 이곳으로 이전하였습니다.

 

 

장군과 관련된 많은 설화들이 전해내려오고 있는데, 장군의 아버지가 훌륭한 아들을 낳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끝에 본부인에게로 돌아오던 길에 만난 여우여인과

 

 

관계를 맺게 되어 낳은 아들이 장군이라는 출생담은 시조(始祖)나 위인 등에서 나타나는 출생설화와 일치하는 점이 있습니다. 또한 장군이 소년원님으로 부임하였을 때

 

 

그가 너무 어리다고 얕보는 관속들에게 뜰에 세워둔 수숫대를 소매 속에 다 집어 넣어보라고 하니, 불가능하다고 하자, 겨우 일년 자란 수숫대도 소매에 다 집어넣지 못하면서

 

 

20년이나 자란 원님을 소매 속에 집어넣으려 하느냐 라고 호통을 쳐서 기를 꺾었다고 하는 유명한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고을에서 여름날 개구리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부적을 써서 연못에 던지게 했더니 개구리가 다시는 울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고, 또, 남산(삼각산)에 사는 수백 년 된 호랑이가 중으로 변신하여

 

 

사람을 해친다는 민원을 듣고 호랑이를 편지로 불러와 크게 꾸짖어 앞으로 새끼도 평생 한번만 낳고 몇몇 산에서만 살게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참조<낙성대 안내문> 사진은 미러리스 소니 a6000(sel50f18), A모드입니다.

 

 

오믈의 이정표 모음입니다. 이 길은 관악산둘레길, 인헌공 강감찬길과도 겹칩니다.

오늘의 트레일링을 서울대입구(관악산관리소앞)에서 스탬프 찍고 마무리하여 걸은 거리는 7.9 km 됩니다. 관악산코스엔 여러 방향으로 등산로들이 이리 저리 서로 얽혀 있어서 갈림길이 자주 나오지만 이정표 표시가 잘되어 있어 둘레길을 벗어날 염려는 안해도 될 것 같아요.

 

  사진: 삼성 갤럭시 6 엣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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