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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온다던 비가 예보대로 오후 3시쯤 되면서 내리기 시작해서 자전거 타고 라이딩 나갈 생각을 접고 작은 접이우산을 들고 아차산으로 향했습니다. 비는 안개비로 내리기 시작하고는 있지만 오후 6시경에는 멈출 것이라는 예보에 기대를 걸고, 출발은 아차산관리소에서 해서 가파른 계단을 걸어 올라 아차산산성 발굴터를 지나 내려가면 낙타고개입니다.

 

낙타고개부터는 구리둘레길 1코스로 이어져 오늘은 가벼운 산행으로 대성암(범굴사)까지만 갔다 올 생각으로 걸어 올라 가는데 안개비는 이슬비로 되어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더니 대성암에 다가갈 즈음에는 하얀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눈발은 곧바로 함박눈송이로 변해 쏟아져 내려 마치 목화송이가 날리는 듯했습니다. 4월 8일인데 눈이라니, 좀처럼 보기 드문 눈송이죠. 눈이 많이 내려 산길에 쌓이면 내려갈 때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잠시 눈발은 곧 멎었으나 빗방울은 멎지 않아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산길을 내려왔습니다.

 

우중에 산길을 걸은 거리는 4.9 km 되네요. 눈발이 날리는 대성암의 풍경사진은 비가 오는 날이라 작고 가벼워 휴대성이 좋은 번들렌즈를 장착하였습니다.

 

범굴사 정문 올라가는 계단, 앞에 고목들, 눈이 내립니다. 흐린 하늘,

대성암에는 쌀바위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곳은 신라의 의상대사가 도를 닦고 있던 곳이어서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대사의 가르침을 받으려고 찾아왔는데도

 

축대 위에 삼성각, 철 난간, 함작눈발이 날립니다. 흐린 하늘,

수도하는 자리 뒤에 있는 바위구멍에서 쌀이 쏟아져 나와 많은 사람들에게 공양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쏟아지는 함박눈, 처마 밑, 올려다 본 사진,

4월의 눈발이 함박눈송이로 변해 펄펄 내리고 있습니다.

 

돌계단에 내리는 함박눈,

하늘이 내려준 천공미를 더 많이 얻고자 밥을 짓는 사람이 욕심내 쌀이 나오는 바위구멍을 넓히려 하자 바로 쌀이 하나도 나오지 않고 쌀뜨물과 타버린 쌀이 수삼일 동안

 

석등, 석양, 프라스틱 의자 2, 파란 색, 앞에는 철 난간,

나오다가 멎었습니다. 이후로는 다시는 쌀이 나오지 않았다고 하네요.

 

대웅전, 화려한 단청, 올려다 본 사진,

이 절은 약 1,300여 년 전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하였으며 조선초에 무학대사가 중창하였다고 하지만 그 빙거(憑據)는 없는 모양입니다.

 

석굴 앞, 쏟아지는 함박눈 눈발,

1921년 고 안보광 화상(和尙)이 관음기도 후 서몽(瑞夢)을 받고 이곳을 찾아와 석굴(石窟)을 발견하고

 

대웅전 뒤, 단청, 올려다 본 사진, 우측엔 석굴,

범굴사(梵窟寺)라는 암각문(岩刻文)을 확인하고 폐허 된 이곳 절터를 인수하여 법당과 요사(寮舍)를 재 창건하고

 

석굴 근접사진, 바위, 암혈,

관음대성(觀音大聖)의 계시를 받았다 하여 이름을 대성암으로 개칭하였습니다. 오른쪽이 쌀이 나왔었다는 바위(암혈)입니다.

 

대웅전 앞 절마당에 노거수 느티나무, 옆으로 놓여진 푸라스틱 파란의자 여러 개, 흐린 하늘,

법당 뒤편 암천정(岩天井)에는 암혈이 있어 쌀이 나와 공양미로 쓰고 그 아래 돌확에 우물이 있어,

 

처마끝에 매달린 풍경, 우측에 느티나무 가지, 흐린 하늘,

사용수(寺用水)로 썼습니다.

 

범종각, 앞에 노거수 느티나무, 우측에 소나무, 흐린 하늘,

6.25 전란 중 전파된 것을 중건하였고 1978에서 1981년까지 대웅전을 비롯하여 요사와 삼성각과 종각을 재축하였습니다.

 

작은 동자불상들,

1992년 1월 원인불명의 심야화재로 완전 소실된 것을 제가불자들의 정성 어린 시주로

 

물확

1992년 2월부터 1996년 6월까지 완전 재창건을 하게 되었습니다. 참조 <대성암 안내문>

 

비에 젖은 숲길

대성암에서 급경사로 내려가는 돌계단이 비에 흠뻑 젖어 있습니다.

 

 

글번호: 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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