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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마을에 들어서는 대문채에 하얀 아기버선을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의미는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새해맞이 설날에 한해의 악귀를 쫓고 만복을 비는게 아닐까요,


광장에는 하얀 텐트들을 둘러 치고 새해맞이 설 장마당을 준비하느라 바쁜 모습들인데 외국인 관광객이 많네요..


남산 북쪽 기슭 한옥마을이 들어선 필동 언저리는 맑은 물 흐르는 산골짜기에 천우각(泉雨閣)이 있어 여름철 피서를 겸한 놀이터로 한양에서 이름있던 곳이며,


청학(靑鶴)이 사는 선향(仙鄕)이라 하여 청학동(靑鶴洞)으로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청학동은 신선이 사는 곳으로 불리울 만큼 경관이 아름다워 한양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삼청동,


인왕동, 백운동, 쌍계동과 더물어 한양5동(漢陽五洞)으로 손꼽히던 곳입니다.


이곳의 옛정취를 되살리고자 물을 흐르게 하고 골짜기에 정자를 짓고 나무를 심어서 전통정원을 조성하고,


약 2천4백여 평의 대지위에 서울의 팔대가(八大家)로 불리어오던 사대부가로 부터 일반 평민의 집에 이르기까지 전통한옥 다섯채를 이곳에 옮겨놓았습니다.


이들 한옥에는 집의 규모와 그 집에 살았던 대가들의 신분에 걸맞는 가구들을 옛스럽게 들여놓아,


선조들의 생활모습을 볼 수 있는 명소로 꾸며놓았습니다.


옥인동에 있던 윤씨가옥을 보면,


당시 옥인동 47번지 일대의 너른 땅은 순종의 황후인 순정효황후의 큰아버지 윤덕영의 소유였었는데요, 그는 20여채의 집을 짓고 일가붙이와 모여 살았다고 하는데,


그 가운데 서양식으로 지은 사위집과 윤덕영의 측실이 거처했던 옥인동(47번지133) 가옥만 남아 있어서 1998년에 이곳에 남산골 한옥마을을 조성하면서,


옥인동 가옥을 옮겨 지으려 하였으나 부재가 너무 낡고 손상이 심해 그대로 신축으로 조성하였습니다.


세밀하게 고증하여 지었고 원래 터가 진 땅의 높낮이 차이까지 일부나마 되살려 본래 분위기를 재현하였습니다.


매우 규모가 큰 ㄷ 자형 안채에 사랑채 구실을 하는 마루방과 대문간이 더해져 전체 배치는 ㅁ 자형을 이루지만 아무래도 안채를 위주로 지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간소하게 민도리집을 채택하였으나 안채 앞쪽은 일반 가옥에서는 보기드믈게 기둥머리에 익공(翼工)을 치장하는 등 건축구조와 세부기법은,


당시 최상류층 주택의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택영의 재실(齋室)을 보면,


윤택영이 그의 딸 순정황후가 동궁계비로 책봉된(1906년) 후 이듬해 황후가 되어 창덕궁에 들어갈 때 지은 집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집은 일반적인 주택이 아니라 순종이 제사지내려 올 때 불편함을 덜어주기 위한 재실입니다. 원래 동대문구 제기동(224번지)에 있었는데,


1998년에 한옥마을을 조성하면서 이곳으로 옮겨졌습니다. 건물배치는 으뜸 원(元)자 모양으로, ㅡ자형으로 된 사당(祀堂)은 제일 안쪽의 높은 터에 자리 잡고,


그 남쪽의 한단 낮은 터에 몸채를 두었고, 몸채는 안채와 사랑채가 한 건물로 이어져 ㅡ자 모양이 되고 그 앞에 동서로 행랑채가 연결되어 전체적으로는 좌우대칭입니다.


가운데 마당과 대청으로 통하는 문을 둬 다른 전통한옥에서는 보기힘든 독특한 구성으로 벽면 창호 장식 등에서 고급 건축기술을 엿볼 수 있습니다.<참조 한옥마을 안내문>


오늘의 라이딩은 광진교-한강-용비교-청계천(3가)-남산골 한옥마을을 왕복한 약 40 km 입니다. 사진은 미러리스 소니a6000(sel28f20), A모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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