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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 관람을 마치고 나와 능참배길을 따라가면서 갈림길에 세워져 있는 안내표지석.

 

 

향로(좌)는 제향시 향과 축문을 들고 가는 길, 어로(우)는 제향을 드리러 온 왕이 걷는 길입니다.

 

 

정자각

 

 

열려있는 정자각 후문에서 앞쪽의 홍살문이 보입니다.

 

 

비각

 

 

표석(表石)은 영조 29년(1753년)에 조성하였는데 앞면에 '조선국문정왕후태능(朝鮮國文定王后泰陵)'이라고 새긴 서체는 홍계희의 필체입니다.

 

 

오늘 영하 14도, 한강은 더 얼어있고 매끈한 빙질이 좋아보입니다, 그런데 자전거 프레임에 달고 다닌 생수가 얼어 물도 못 마신 날은 처음입니다.

 

 

날이 너무 추워 망설이다가 하늘이 맑은 날이어서 스키바지, 다운조끼, 발토시, 털모자, 손토시를 챙겨 완전무장을 하고 라이딩 출발했습니다.

 

 

춥지만 맑고 푸르른 하늘빛에 단청이 어울리는데 하늘이 더 파란 하늘이었으면 더 잘 어울릴텐데요..

 

 

손토시를 했는데도 냉각된 핸들에 손이 너무 시려서 편의점에 들러 핫팩을 하나 사서 손토시 속에 넣고 조몰락거리니 따스하는 듯하더니 금방 달아올라 뜨끈뜨끈 합니다.

 

 

오늘같이 추운 날에 손토시+핫팩은 최상의 조합이네요. 사진은 수복방(守僕房)입니다.

 

 

수복방은 능지기들이 능역을 관리하기 위하여 정자각 동쪽에 지은 작은 집입니다. 오늘 능 가까이 접근은 안되네요, 출입문이 닫혀 있습니다.

 

 

능으로 오르는 양지바른 잔디에도 하얀 눈이 녹지 않고 있습니다.

 

 

태릉은 제11대 중종의 비 문정왕후의 능으로 병풍석과 난간석을 둘러 치장하였으며 석인상의 키가 3m를 넘는 등 규모가 크고 웅장한 조선중기 왕릉의 모습입니다.

 

 

조선시대의 왕은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자주 왕릉에 행차, 능행(陵幸)하였는데,

 

 

능행은 선왕에 대한 효를 표현하는 동시에 왕위의 정통성을 강조하고, 왕의 위엄과 상징성을 대내외에 알리는 중요한 의례였습니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왕의 능행이 증가했는데 영조는 재위 52년간 70 여차례, 정조는 재위 24년간 60 여 차례에 이르렀습니다.

 

 

왕은 재실에 묵으면서 제례와 왕릉의 봉심(奉審), 개수(改修)등의 역사(役事)에 친히 임하고 그 감회를 적어 재실에 걸어두기도 하였습니다.

 

 

웅장하고 화려한 능행 행렬은 백성들이 왕을 직접 볼 수 있는 좋은 구경거리이자,

 

 

왕에게 직접 민원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능행 때면 백성들은 행렬 앞에 엎드려 상언(上言)을 올리거나 징과 북을 두드려 억울함을 호소하는 격쟁(擊錚)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왕은 직접 백성을 위로하였으며 재난을 당하거나 생활이 어려운 백성을 구제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능행 중에는 과거를 열어 인재를 등용하는 한편,

 

 

수도권 방위 상황을 점검하고 군사를 훈련하는 기회도 가졌습니다. 참조 <조선왕릉 전시관 관람안내문>

 

 

광진교-용비교-중랑천-묵동천-태릉을 왕복한 오늘 최강 한파 속의 라이딩은 48 km입니다.

 

 

조선왕릉전시관을 둘러본 영상입니다.

삼성 갤럭시카메라(4.1-86.1mm)

 

 

글번호: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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