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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내역(폐역) 주변엔 다산유적지가 유명하죠. 오늘은 다산유적지로 넘어가기 전 마재고개 아래에 있는 마재성지를 찾아보았습니다. 마재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크게 만나는 한강변에 안겨있는 마을인데, 이곳은 정약현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다산)등 나주 정 씨 4형제의 생가터로서 한국천주교회 요람지의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4형제 중 정약종은 그의 중형 약전이나 동생 약용보다 늦게 천주교를 수용하여 1786년 세례를 받았으나 그의 형제들과는 달리 배교하지 않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교회활동에 헌신하다가 1801년 신유박해 때 참수형으로 순교하여 이곳 마재에 묻혔습니다. 광나루-능내-마재성지를 왕복한 오늘의 라이딩은 49 km입니다. 

 

2006년 의정부 교구 남궁 경 신부가 생가터 약 500 m 전에 마재성지를 새로 조성하였습니다.

 

정약전은 1779년 권철신(암브로시오)의 주도로 열린 천진암 강학회에 참석하여,

 

이벽(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천주교 교리를 듣고 천주교를 신앙으로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정약종은 교리공부에 매진하여 교리지식에 해박하였으며 주문모 신부에 의해 평신도회인 명도회 회장에 임명되기도 하였습니다.

 

1785년 봄 명례방 집회가 형조에 발각되어 유림에 천주교를 배척하는 척사통문이 돌자,

 

사대부가의 천주교 배척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명례방 집회에 참석했던 정약전과 정약용이 부친으로부터 엄한 추궁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791년 신해박해를 계기로 조정에서 정식으로 천주교 금지령이 내려지자,

 

정 씨 형제들은 문중으로부터 더욱 심한 박해를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1786년 세례 입교한 정약종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식솔을 이끌고 지금의 한강 팔당댐을 건너 광주 분원으로 이주하였습니다.

 

그 후 정약종의 가정은 1800년 양근지방의 박해로 서울로 피신하였으나,

 

1801년 신유박해로 정약종과 아들인 정철상이 순교하였습니다.

 

마재는 이벽, 이승훈, 황사영 등 신앙의 선조들의 발길이 잦았던 곳이기도 합니다.

 

조선후기 실학자이면서 최초의 신학자인 정약종 순교자는,

 

정약전 정약용(다산)과 한 형제이면서 끝까지 신앙을 지켜 순교한 초기 한국천주교회의 기둥이었습니다.

 

형제들 중에 가장 늦게 신앙을 받아들였지만,

 

불타는 열성으로 끝까지 신앙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최초의 평신도 단체인 명도회의 초대회장으로서 전교에 힘썼으며,

 

특히 한문을 모르는 신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기 위해,

 

순수 한글 교리서인 주교요지를 최초로 편찬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뒤 교리를 종합 정리하여 성교전서라는 책을 집필하던 중에,

 

신유박해가 일어나 서소문 밖에서 순교하였습니다.

 

가족들도 기해박해 때 모두 순교하여,

 

모든 것을 하니님께 봉헌한 참 신앙인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자료참조: 마재성지 < http://www.majaesungj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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