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을 한 바퀴 도는 순성(巡城) 길이 열리면서 함께 걷기 좋은 길로 인기가 올라가고 있는데 오늘은 흥인지문에서 올라가는 출발점에 조성된 동대문성곽공원을 찾아 둘러보았습니다. 오욕의 역사 속에서 허물어지고 도시개발로 훼손된 도성의 성곽을 복원 보수하여 당당했던 옛 모습이 되살아난 듯 낙산 산등성이를 타고 오르는데 계속 오르면 혜화문 숙정문 창의문으로 이어져 인왕산을 돌아내려외 숭례문 광화문 동대문으로 순성길을 한 바퀴 돌게 됩니다. 오후에 비기 내린다는 예보가 있어 좀 서두르는 듯 내려와 청계천 6가에서 자전거길에 진입, 중랑천-용비교-출발점인 광나루로 돌아온 오늘의 라이딩은 35 km입니다. 다 와서 광진교밑에서 소나기를 만나 잠시 비를 피할 수 있어 오늘 그런대로 운이 좋았다고나 할까요.
요역 중 대표적인 것이 군역이었지만 길을 닦는 치도역 성을 쌓는 축성역등도 사대부를 제외한 백성들에 부과되었습니다.
한양도성 축성은 전국의 백성들에 대한 중앙정부의 통제력을 점검하는 계기이기도 하였습니다.
조선의 수도 한양에 전국의 백성 약 20만 명을 동원하여 거대한 한양도성을 건설하였다고 합니다.
태조 5년에 경상 전라 강원과 국경 인근지역을 제외한 서북면과 동북면의 백성들을 1차에 118,070명, 2차에 79,400명을 동원하였고,
경기 충청 황해도 백성들에겐 궁궐 건설을 맡겼습니다.
1422년(세종 4년)에는 전국에서 322,460명의 백성과 2,211명의 공장(工匠)을 동원하였는데,
1,704년(숙종 30년) 이후의 도성 수축공사는 도성 내외 병사들과 임금 노동자인 모군(募軍)들이 담당토록 하였다고 합니다.
성벽은 몸통인 체성(體城)과 그 위에 낮게 쌓은 여장(女墻)으로 구성되는데 체성은 다시 바깥쪽의 석축과 안쪽의 뒤채움으로 이루어집니다.
석축은 뒤채움으로 쌓은 흙과 돌의 압력을 견딜 수 있도록 위로 올라가면서 안쪽으로 들여쌓아 상단부와 하단부 사이에 수직으로 약 1m의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여첩(女堞), 타(朶), 성가퀴라고도 하는 여장은,
성벽에 의지하여 몸을 보호하면서 적을 공격하기 위한 시설입니다.
성벽을 중간중간 끊어 요철 모양으로 쌓았는데,
끊어진 곳을 타구라 하며,
타구와 타구 사이를 첩 또는 타라고 하였습니다.
세종대에 쌓은 여장의 모양은 알려지지 않고 있는데,
숙종대에 쌓은 여장은 주력 무기가 총으로 바뀐 것을 반영하여 총구멍을 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를 총안이라 하는데 수평으로 낸 것은 먼 곳의 적을 공격하기 위한 원총안(遠銃眼),
아래쪽으로 기울여 낸 것은 가까운 적을 공격하기 위한 근총안입니다. <자료참조: 한양도성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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