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위궁재사'는 번동 북서울꿈의 숲에 있습니다. 순조임금의 딸 복온공주의 부마인 창녕위 김병주의 제사를 올리는 재사인데요, 등록문화재(40호)입니다. 전쟁으로 파괴되고 다시 지으면서 많이 달라졌다고 볼 수 있지만 그래도 조선조 말기에 지어진 궁(宮)집의 구조를 볼 수 있는 중요사례로 건축학적으로 높은 가치가 있는 문화재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왕족의 살림집으로도 쓰이고 인조반정에 공신인 영의정의 별장으로도 쓰인 만큼 안채, 사랑채, 대문채, 아래채를 다 갖추고 있네요. 한일합방의 비통한 순국의 혼이 서려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오늘 라이딩은 광나루-용비교-중랑천-우이천-창녕위궁재사를 왕복한 50 km입니다.
재사로 들어가는 대문인데요, 왼쪽에 대문채는 현재 관리실로 쓰고 있네요.
복온공주의 부마 창녕위 김병주(1819-1853)의 재사, 안채, 사랑채입니다.
재사는 원래 묘소곁에 지어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곳이지만, 이곳은 도성에 가깝게 위치하였기 때문에 살림집을 겸하여 지어졌다고 합니다.
공주와 부마의 묘는 용인으로 이장되어 재사만 남았는데, 안채와 아래채가 6.25 때 파괴되었으나, 안채는 1955년에 다시 지었습니다.
안채에 4칸반 규모의 제청이 있는데, 사랑채가 아닌 안채에 제청을 둔 것은 아주 특이한 사례로 보고 있습니다.
이곳에 아래채가 있었지 않았나 보입니다.
이곳은 창녕위(김병주)의 손자인 김석진(1847-1910)이 한일합방 후 일제로부터 남작의 작위를 받았으나 거절하고 망국의 비통과 울분으로 순국자결한 곳이기도 합니다.
왕족의 집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뛰어난 재료와 구조를 지니고 있어 건축적으로 높은 가치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제사를 겸하고 있어 전통적인 경기지방 살림집의 형태와는 다르게,
안채와 사랑채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는 설명입니다.
오늘 이곳으로 야외 출사를 나온 분들 같은데, 사진촬영에 열중하고 있네요.
사랑채에 군불을 때던 아궁이, 솥이 그렇게 낯설지 않은데요.
왼쪽의 재사는 1800 년대에 지은 건물이고,
오른쪽의 사랑채는 원형보전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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