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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춘선길을 타고가다 사릉역->사릉사거리->사릉로를 따라 직진하면 왼쪽에 울창한 송림을 볼 수 있는데요, 그 송림으로 진입하면 사릉입니다. 금곡역(폐역)에서 금곡사거리로 내려가 좌회전해서 사릉로따라 올라가도 되구요. 사릉은 비운의 왕인 단종의 비 정순왕후 송씨의 능이지만 왕릉 못지않게 문화재청이 관리하는 궁궐과 능원에 소요되는 소나무와 기타 여러종의 나무 묘포장으로 생태문화자원 보존에 큰 의미가 있다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광나루-왕숙천-경춘선-사릉역-사릉사거리-사릉을 왕복한 오늘의 라이딩은 약 46 km 입니다. 사진은 미러리스 소니a6000(selp18105g) 프리미엄모드에 모두 무보정입니다.

 

 

정순왕후는 여량부원군 송현수의 딸로 세종 22년(1440)에 태어나 15세 때 한 살 어린 단종과 가례를 치러 왕비로 책봉되었는데요, 사실 이 결혼은 단종이 즉위한 지 만 1년이 되는 날 수양대군과 양녕대군이 자신들의 생각대로 왕비를 고른 후 단종에게 거의 반 강제로 왕비를 맞이한 것인데, 결혼한 이듬해인 1455년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이 되자 정순왕후는 의덕왕대비가 되면서 역경의 시련이 몰아치게 됩니다.

 

 

왼쪽이 정자각, 오른쪽은 비각

 

 

사육신과 연루자 70여 명 모두가 처형되면서 단종 복위 기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상왕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로 유배되는데요. 단종이 유배되자 정순왕후는 부인으로 강봉되고 나중에는 관비로까지 전락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 당시 놀라운 기록은 신숙주가 정순왕후를 자신의 종으로 달라고 했다가 물의를 빚은 사단이 있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함부로 쳐다보지도 못하던 왕비이지만 관비가 되었으므로 신숙주의 요청이 당시 법적으로 문제되는 것은 아니나, 동료들은 절개를 지키다가 처절하게 죽어 사육신이 된 상황에 왕비를 종으로 달라는 신숙주의 처신이 어처구니없었다고 할 수 밖에요..

 

 

세조도 신숙주의 행동이 놀라웠는지 "신분은 노비지만 노비로서 사역할 수 없게 하라"라는 명을 내려 정순왕후를 정업원으로 보냈는데요, 정업원은 조선 초기 슬하에 자식이 없는 후궁이나 결혼 후 남편을 잃고 혼자 살아야 했던 왕실의 여인들이 기거하던 곳입니다.

 

 

정순왕후는 정업원에서 시녀들과 함께 살면서 시녀들이 동냥해온 것으로 끼니를 잇기도 했지만, 스스로 생계를 부담하기 위해 제용감에서 심부름하던 시녀의 염색 기술을 도와 자줏물을 들이는 염색업을 하며 어렵게 살았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지치라는 식물의 뿌리를 이용해 비단에 물을 들였다고 하네요.

 

 

정순왕후가 염색업을 하던 골짜기를 자줏골이라 불렀는데, 현재 한성대학교 후문 부근에 있습니다. 정순왕후가 염색하던 곳을 자주동샘(紫芝洞泉)이라고 하는데 정순왕후가 이곳에 와서 단종이 억울하게 죽은 영월 쪽을 향해 명복을 빌며 비단 빨래를 하면 저절로 자주색 물감이 들었다고 합니다.

 

 

1698년 숙종에 의해 노산군이 단종대왕으로 복위되자 송 씨도 정순왕후로 복위되었으며, '평생 단종을 생각하며 밤낮으로 공경함이 바르다'는 뜻으로 능호를 사릉(思陵)이라 붙였다고 합니다.<자료참조: 이종호의 과학문화유산답사기>

 

 

능에는 접근금지되어 있어서 줌(105mm)으로 최대한 당겨찍었습니다. 문인석과 석물이 단촐하네요.

 

 

정자각 내부에는 제상(祭床)이 가로로 놓여있고, 그 아래는 향상(香床)이 놓여있습니다.

 

 

비각

 

 

경내는 큰 나무들이 우거져있어요.

 

 

특히 소나무가 많은데요,

 

 

이곳에 있는 소나무는 숭례문 복원에 사용될 정도로 한국의 대표적인 소나무로 평가받고 있는데요. 1999년에는 사릉에서 재배된 묘목을 단종의 무덤인 영월 장릉에 옮겨 심어 단종과 정순왕후가 그간의 아쉬움을 풀고 애틋한 정을 나누도록 했고. 이때 사용된 소나무를 '정령송(精靈松)'이라 부르고 있답니다.

 

 

이 중에 정령송이 자라고 있나요..

 

 

재실은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데요, 재실옆 큰 은행나무가지에 앉아 재잘대는 참새를 줌으로 당겨찍어 보았습니다.

 

 

재실을 둘러 감싸고 있는 돌담

 

 

그런데 재실 출입문이 안보여요..

 

 

재실은 제관들이 제례를 준비하는 곳으로 능역을 돌보는 능참봉이 상주했던 곳이죠.

 

 

출입문이 잠겨있습니다. 아쉽게도 재실안으로 들어가 볼 수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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