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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의 전성기, 화신백화점까지 들어서며 번성했던 고랑포구, 전쟁으로 폐허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전의 옛 거리를 전시관에 재현, 옛 향수와 함께 잠시 그 시절로 떠나보는 시간여행

 
지난 일요일, 100대 영웅 미해병 하사 레클리스(군마, 한국명 아침해)를 만나보려 달렸던 자전거여행에서의 고랑포구 역사공원(전시관)을 둘러본 별도포스팅입니다. 연천 고랑포지역의 역사공원이니 만큼 구석기, 신석기시대 이야기부터, 3국 시대, 조선시대, 그리고 6.25 전쟁에까지 걸친 역사이야기로 전시관에 가득 채워져 있으나 그런 이야기들 보다는, 인삼, 쌀, 콩, 소금, 새우젓등의 교역으로 번성했던 포구이야기를 중심으로 오늘 포스팅에 담고 있습니다.
 

고랑포는 한반도의 남과 북을 가르는 임진강에서 폭이 가장 좁고 얕은 곳이지만, 포구 앞까지는 임진강을 거슬러 들어오는 밀물이 밀려들어와 크고 작은 배들이 드나들기 최적의 포구여서 포구엔 언제나 황포돛배들이 줄을 이었고 주변엔 수십 채의 점포와 살림집들이 빼곡하게 자리 잡으면서 상업이 발달, 번성했던 포구입니다. 당시 개항기를 거치면서 점점 위상이 강화되다가 1887년(고종 24)부터 시작된 쌀, 콩 등의 곡물수출이 급격히 증가하여 산지의 중간 집결지 역할을 하면서 발전을 거듭하였습니다.
 

소금과 새우젓을 싣고 멀리  마포나루터에서 고랑포나루까지를 오가던 황포돛배
 

고랑포구 건너편 임진나루터에는 지금 황포돛배 유람선이 인기 관광코스죠.
 

번성 전성기인 1930년대에는 고랑포에 화신백화점 분점, 은행, 우체국, 약방, 양장점, 그리고 즐비한 음식점, 그리고 투숙객을 위한 여관 등의 상권이 형성되어  그야말로 없는 게 없었다고 할 만큼  큰 상업도시가 형성되었습니다. 당시 인구를 3만여 정도로 추정하고 있는데 지금의 연천군 전체 인구가 4만 3천여 정도임을 감안하면 실로 당시에 엄청나게 번성하던 큰 상업도시였네요. 
 
그런데 해방이 되면서 38선이 그어지며 쇠락, 거기다 전쟁이 터지면서 가장 먼저 격전을 치른 격전지로 초토화 폐허되면서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전쟁 후 70여 년간 출입금지, 그 사이 김신조 일당 무장공비가 지나가며 안보취약지역으로 더욱 굳게 닫혀 있다가 고랑포구역사공원이 2019년 개장되면서 재조명, VR, AR을 활용하여 사라진 옛 모습을 체험하는 체험장이 전시관에 문을 열면서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단위의 방문객들이 많아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포구나루터는 군철책선 안쪽에 갇혀 긴장감속에 쓸쓸히 임진강 강물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오전에 두 번, 오후 시간대에 해설사의 안내로 1시 반, 2시 반, 3시 반에 철책문이 열리면서 나루터까지 걸어갔다 올 수 있는 것인데, 자전거 타고 쓱 보니 철책이 닫혀 있어 못 가나 보다 하고 그냥 돌아온 것이 아쉽네요.
 
번성했던 당시의 거리풍경을 전시관에 세트처럼 재현해 놓았는데, 설명이 빠져 있어 그때 그 시절 옛 추억을 느끼기엔 좀 아쉽네요.
아마도 사진상으로 전해지는 자료를 바탕으로 재현시도를 한 것이 아닐까 싶은데요. 
간판의 모양과 글씨에서 옛 향수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네요.
 

과일 야채가게 제일상회
각종 생선 형제상회
양복 양장 샤론양장점
화신백화점 분점
우체국
임진강 약방(한약방)
쌀 잡곡 연천곡물
명금당 시계포(수리전문)
우시장

그림으로 보는 우시장이지만 규모가 엄청나네요.
모두모두 흰옷을 입고 있네요.
 

자매 국밥집
국밥상에 막걸리 주전자
단기 장기 숙박 고랑포 여관, 이발도 되네요.
인삼 수삼 고려인삼

다녀와 검색을 해보니, 이런!!, 한 시간 정도 기다리면 기다렸다가 철책문을 열어주면 강변 나루터에 다녀올 수 있는 것이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전시관을 나와 슬쩍 보고 철책이 의례 닫혀있을 것으로만 알고 그냥 전곡역을 향해 출발한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임진강변은 임진나루터에서 황포돛배를 타기 위해 한번 밟아 본 것 말고는 어딜 가나 출입금지여서, 그 선입견이 머릿속에 잠재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나 봅니다. 
 
글번호 1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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