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에 창건된 전등사(傳燈寺),
천년고찰이죠, 전국구 유명 사찰이어서 설명이 필요 없을 명찰인데 강화를 구석구석 돌아보는 강화나들길은 무슨 까닭인지 비켜지나가고 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임시로 지은 가궐(假闕)도 사찰 내에 두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는 정족산 사고(史庫)와 왕실의 족보를 보관하는 선원보각을 두기도 했던 국찰급 중요사찰이었습니다. 사찰 건물의 기둥 하나하나 기왓장 하나하나까지도 모두 오랜 세월을 간직해 온 문화유산이랄 수 있는 보물급이기도 하죠.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고 잊을 수 없는 사실(史實)은 병인양요 전투에서 역사적인 전승(戰勝) 기록을 가지고 있는 전적지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전등사를 실로 오랜만에 다시 찾아 돌아보고 전등사를 품고 있는 정족산(鼎足山)에 메아리치는 승전의 함성을 되뇌며 정족산성인 삼랑성(三郞城)을 둘러보고 내려왔습니다.
강화터미널에서 70번 버스에 승차, 30여 분만에 전등사 남문 정류장에 하차하여 우측길로 걸어 올라갑니다.
전등사 입구에 명품 소나무들로 가득한 송림이 변함없네요.
주차비만 받습니다, 2000원, 애완동물과 동반 입장하려면 동의서를 작성 후 출입이 가능하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습니다.
남문의 문루인 송해루입니다.
조금 더 다가가니 아름답고도 웅장한 문루에 압도되네요.
송해루 우측으로 이어지는 성곽은 정족산성(삼랑성)입니다.
단군이 세(3) 아들에게 성을 쌓게 하고 이름을 삼랑성이라 했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남아 있으며 이곳은, 고종 3년(1866)에 프랑스 군대가 침공한 병인양요 때 양헌수 장군이 이끄는 관군이 동문과 남문으로 공격해 오던 프랑스군을 무찌른 곳으로 동문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양헌수 승전비가 세워져 있다는 설명입니다. 신식 총포로 무장한 프랑스군을 어떻게 무찔렀는지 동문에 보다 상세한 전투기록이 소개되어 있으면 더욱 자랑스럽겠는데요.
왼쪽 자락에는 인공당과 노은선사의 부도탑입니다.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길가에 꽃무릇이 무리 지어 피어 있습니다.
사찰 풍경에 잘 어울리는 붉은 꽃무릇,
보호수 수령 700년의 은행나무, 높이 24m, 둘레 6.5m,
조선조에 배불숭유에 따라 사찰이 조정으로부터 박해를 받으면서 수확량의 두 배인 은행알 스무 가마를 공물로 내라는 명을 이행할 수 없는 절박한 사정에서 추송스님이 열매를 맺지 말아 달라고 기도한 후 노승과 동자승과 함께 사라지면서 그 후 더 이상 열매를 맺지 않았다고 하네요.
수령 700년의 보호수 은행나무와 그 옆에 수령 400년의 느티나무입니다.
선불장은 스님들의 공양공간입니다, 일반인들의 구내식당과 유사하죠.
템플스테이 앞을 지나,
대웅보전 앞의 보호수, 수령 280년의 단풍나무입니다. 나무 뒤에 보이는 대조루,
청단풍으로 밑둥에서부터 여러 가지가 나와 수세가 왕성한 단풍나무입니다.
대조루
목은의 시 '전등사에서'에 대조루라는 시구를 읊은 것으로 보아 고려말에 이미 대조루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의 건물은 1932년에 복원해 다시 지은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대웅보전
대웅전에 모신 석가여래삼불좌상,
전등사 사찰 경내 풍경
관음전
약사전
약사전은 광해 13년(1621)에 개축한 대웅전과 건축양식이 유사하여 서로 비슷한 시기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명부전
마애불은,
발굴작가인 이영섭의 작품입니다.
극락전
전등사 철종
전등사 철종은 중국 송나라 때 무쇠로 만든 중국종인데, 일본군이 빼앗아 부평 병기창에 갖다 놓은 것을 광복 후에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하네요.
철종각 옆 거대한 고사목에 목각으로 완성한 시왕상인가 보네요. 생동감이 넘쳐나는 작품입니다.
삼성각
삼성각에서 사고(史庫)로 가는 오솔길
사고 앞이 포토존인데 지금 보수공사가 한창이어서 어수선하네요.
터만 남아 있던 이 자리에 1998년 사고와 선원보각 두 건물을 복원 후 옛 현판인 장사각과 선원보각을 다시 달았다는 설명입니다.
사고 정문은 닫혀 있는데 이곳에 현대작가전이 열린다는 안내문이 걸려 있습니다.
담너머로 본 사고건물
장사각이라는 현판이 간신히 보이네요.
사고 우측 담을 끼고 올라가면,
삼랑성 탐방로(등산로)에 연결됩니다.
산길은 가파르지만 길지 않습니다.
바로 북문입니다.
북문에서 좌측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성곽길
우측은 절벽, 낭떠러지,
정족산(삼랑성) 정상(220m)에 장대는 없네요.
탁 트인 전망이 강화산성 남장대 못지않습니다.
올라온 길 뒤돌아 본 길, 멀리 온수리입니다.
서문 - 남문 쪽으로 내려가는 길,
파노라마뷰
정상에서 내려와 다시 북문에서 달맞이고개 쪽으로 내려갑니다. 동문 쪽으로 내려가는 것이죠.
강화나들길 코스에서는 벗어나 있지만 이곳 북문 앞에 강화나들길 이정표가 세워져 있네요. 북문을 통과해 가파른 산길을 내려가면 온수리에서 나들길 3코스에 복귀할 수 있다는 친절한 배려로 보입니다.
북문의 위용
완만하게 내려가다가,
급경사로 내려갑니다.
철옹성 같은 삼랑성, 프랑스군이 쉽게 넘볼 수 없는 절벽으로 둘러 쳐져 있습니다.
달맞이 고개에서 직진 방향은 출입금지, 낭떠러지입니다.
우측으로 성곽 따라 급경사 계단길 내려갑니다.
성곽 따라 총안이 곳곳에 뚫려 있긴 한데 지금대로라면 모두 엎드려 쏴 자세가 되겠는데요, 오랜 세월에 흙더미가 무너져 흘러내려 쌓인 결과이겠지요.
동문입니다.
동문 앞 큰 나무, 보호수, 수령 350년의 느티나무, 안내문에 변변한 무기 하나 없이 프랑스군을 맞아 싸워 이겼다는 설명이 달려 있네요. 경이롭습니다.
승전비에 관군 367명이 프랑스군을 맞아 싸운 당시의 상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는 설명입니다.
승전비의 내용을 발췌 정리해 안내문을 하나 세워주었으면 좋겠는데요.
동문을 지나 내려오는 길가에 세워놓은 10월 '삼랑성 역사문화축제' 행사 안내문을 모았습니다.
전등사에 가을음악회(10월 5일), 역사강의(10월 5일), 봉산탈춤(10월 12일), 마당극(10월 13일)이 예정되어 있네요.
전등사 동문 앞 버스정류장에서 코스를 종료, 전등사를 둘러보고 정족산 정상에 올라갔다 오면서 오늘 걸은 거리는 3.6km입니다. 35분 기다려 70번 버스에 승차, 초지대교에 차량들이 몰려들면서 병목현상으로 김포 진입에 시간이 많이 걸리네요. 구래역에서 김포골드라인으로 환승, 귀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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