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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코스는 심도역사문화길이지만 하이라이트는 연미정입니다.
연미정을 둘러보고 내려와 길 건너 강화나들길 출발, 들판길 지나 이어지는 길은 갈잎이 수북한 걷기 좋은 마을 뒷산 야산길(월곶리- 대산리)입니다. 아무도 못 만난 호젓한 산길을 돌아내려와 대산 2리 마을회관 앞에서 굴다리를 통과, 대산침례교회 -> 강화산성 북문을 지나 강화향교에서 마무리한 잔여구간입니다. 연미정까지는 강화터미널에서 10번 버스에 탑승, 10여 분 만에 도착하네요. 역코스를 택한 이유는 오래전에 자전거 타고 갑곶돈대 쪽으로 해서 연미정을 다녀온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푸른하늘, 성곽,가운데 돈대, 우측 성곽에 깃발, 가운데 잔디밭에 비석,

연미정이 자리하고 있는 이곳은 월곶진입니다.
 

푸른 하늘, 돈데, 석축, 아래는 잔디밭, 우측에 키 큰 나무들, 돈대 출입구 우측에 남성 1, 검은 옷,

티원형의 월곶돈대 
 

월곶돈데 안내문, 회색 바탕에 흰글씨,

이곳은 서울, 인천, 연백 등지로 교통하는 월곶나루가 있던 해상로의 요충지였는데,
 

장무공황형장군택지비, 검은 돌에 흰글씨(한자), 뒤로는 돈대 석축, 푸른 하늘,

황형 장군의 집터이기도 하였습니다.
 

황형택지(한글+한자) 안내문, 회색바탕에 흰글씨,

장무공 황형 장군은, 전라좌도 방어사로 왜적을 크게 무찌르고 함경도 야인들의 반란을 진압한 공으로 중종 임금이
연미정을 하사하여 이곳 월곶리에서 만년을 보냈다는 설명입니다. 
 

푸른하늘, 조해루 누각, 왼쪽에 깃발, 누각의 석벽은 흰색,
조해루의 역광 사진, 펄럭이는 깃발에 강렬하게 비치는 햇빛, 성곽 돌담에 드리운 선명한 그림자,

 
월곶진의 문루인 조해루
 

연미정 안내문, 회색바탕에 흰글씨,
연미정 스토리보드, 진한 갈색바탕에 흰글씨, 하늘색 사각 테두리, 뒤로는 보호수 안내판,

 
월곶은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지점으로 물길모양이 제비꼬리와 같다고 하여 정자의 이름을 연미정으로 하였으며 강화 10경의 하나로 꼽힐 정도의 절경입니다. 1,627년 후금(후에 청국)이 침공한 정묘호란 때에 이곳에서 형제관계의 강화조약을 맺은 굴욕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새파란 하늘, 우측에 노거수 보호수 수령 550년, 좌측에 연미정, 보호수 가지를 떠빋치고 있는 세 개의 철봉,

연미정과 수령 550년의 노거수 느티나무,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정면에서 본 연미정, 가운데 연미정 현판(한자), 우측에 보호수 느티나무, 푸른 하늘,

 

뒤에서 본 연미정, 좌측에 보호수 느티나무, 푸른 하늘,
뒤에서 본 연미정, 우측에 부러진 느티나무, 푸른 하늘,

 

파란 하늘, 가운데 연미정 뒷모습, 좌측에 노거수 느티나무, 우측에 부러진 노거수, 푸른 하늘, 좌우로 둘러쳐진 성곽,

연미정 좌 우에 늠름했던 보호수 느티나무, 뒤에서 보아 우측인 느티나무는 부러졌습니다.
 

연미정, 우측 뒤, 바로 옆에 노거수 누티나무(클로즈업)
부러진 느티나무, 사각형으로 둘러쳐진 보호 난간(목재), 뒤로 성곽에 붙어 서 있는 남성 2,

 

부러진 노거수 느티나무 밑둥에 솟아난 새싹(가는 줄기)
앞에 접근금지 안내문, 흰바탕에 붉은 글씨,

부러진 느티나무에 새싹이 돋아나 보호하고 있는데요.
 

푸른 하늘, 노거수 느티나무, 가운데 연미정, 바닥에 쓰러진 느티나무가 누워 있는 자리표시 흰색 라인, 우측에 이어지는 성곽,

부러져 쓰러진 자리를 표시해 놓았습니다. 
 

부러진 느티나무의 대형 사진

2019년 태풍 링링으로 부러진 느티나무의 처참한 모습
 

2016년 8월에 찍은 노거수 느티나무의 부러지기 전의 늠름한 모습,

2016년 8월에 찾았을 때는 연미정 좌측에 보호수 느티나무가 우뚝 솟아있었습니다. 
부러지기 3년 전의 늠름한 모습이죠.
 

새파란 하늘밑 임진강 저편 북녘땅, 아래 보이는 섬은 유도,

연미정에서 임진강 너머로 바라보이는 적막한 북녘땅 앞에 보이는 작은 섬인 유도로 1996년 홍수 때 북에서 소 한 마리가 떠내려 왔는데 비무장지대라 남북 모두 손을 놓고 지내다 보니 못 먹어서 나날이 야위어 가는 소를 보다 못해 남북이 극적으로 합의하여 우리 군이 소를 구출하고 평화의 소로 이름을 붙였다고 하네요. 그 후 평화의 소는 제주 출신의 통일염원의 소와 짝을 맺어 평화롭게 살았다고 하는 훈훈한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강화나들길 길안내 화살표, 흰색 기둥은 진한 바탕에 흰글씨
길건너에 길가에 이정표 말뚝,
길가 나무 기둥에 매어놓은 나들길 안내 화살표,

 
연미정을 둘러보고 내려와 길 건너가 이정표 따라 나들길 역코스 출발입니다.
 

풍요로운 들판, 가운데 비닐하우스,

넉넉해 보이는 들판
 

들판 가운데 농가주택, 기와집, 흰벽, 전봇대 2,
벼 벤 논에 기러기 떼,

 
들판에 기러기 떼들이 벼 벤 논에서 나락 쪼아 먹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나뭇가지에 매어진 나들길 안내 리본, 역광,
강화나들길 안내 화살표, 왼쪽은 녹색에 흰글씨, 오른쪽은 노란색에 검은 글씨,

 
들판길 지나 마을 뒷산길에 진입, 낙엽 밞는 소리만 들릴뿐 아무도 없는 호젓한 산길이 이어집니다.
 

해온마을 표지석, 구름 모양의 흰대리석에 검은 글씨, 받침돌은 사각 직륙면체,

해온마을 입구에서 다시 산길로 진입,
 

햇살 가득한 소나무길
햇살 반사되는 소나무숲,

 
산길에는 갈잎이 수북수북 쌓여 있는 소나무 숲길을 지나, 
 

낙엽 싸힝 산길, 우뚝우뚝 솟은 참나무들,

다시 낙엽 쌓인 산길을 돌아 산업단지 배수지를 지나 내려가면 대산 2리 마을회관입니다.
 

강화나들길 안내 이정표(화살표), 왼쪽은 녹색 바탕에 흰글씨, 우측은 노란 바탕에 검은 글씨, 우측에는 고인돌 가는 화살표, 뒤로는 산자락 잡초,

마을 회관 앞 이정표는 혼란스럽습니다. 정코스는 연미정로 따라 좌측으로 따라가라는 화살표네요. 그런데, 지금
우측 산길에서 내려 온 지점인데 정코스와 역코스의 길이 다른가 보네요. 
 

굴다리 밑 풍경, 널부러진 잡동산이,

마을회관에서 이 굴다리 밑으로 통과하라는 길안내가 없어 우왕좌왕한 지점입니다. 굴다리를 통과 아늑한 마을길을
돌아나가 대산침례교회 앞을 지나쳐 내려가면,
 

은행잎 수북한 오르막 산길, 앞에 보이는 북문, 가운데 걸어올라가는 남성 1, 검은 옷,

강화산성 북문으로 올라가는 길에 노란 은행잎이 수북이 쌓였습니다. 
 

북문의 정면 뒷모습, 올려다 본 사진, 이어진 왼쪽 성곽, 열려 있는 북문, 파란 하늘,

북문
 

북문의 정면, 진송루(한자) 현판, 검은 바탕에 흰글씨, 우측으로 이어지는 성곽, 푸른 하늘, 누각 우측에 큰 나무, 우측 성곽으로 올라가는 돌계단,

북문은 진송루입니다. 
 
강화산성은 고려기 몽골의 침입에 대항하여 개경에서 강화로 수도를 옮겼을 때의 도성으로 쌓은 성인데, 내성은 1259년 몽골에 의해 헐린 후 조선시대에 돌로 다시 축성하였습니다. 그러나 병자호란(1636) 때 청군에 의하여 다시 파괴되어 숙종 3년(1677)에 크게 넓혀 개축하였으나 6.25 전쟁으로 다시 파괴돼 석축만 남아 있던 것을 1977년에 복원한 모습입니다. 북문은 본래 누각이 없던 것을 정조 7년에 강화유수 김노진이 누각을 세우고 진송루라 하였습니다.
 
북문에서 우측으로 나들길 길안내 따라 산길을 돌아내려가다 은수물로 내려가는 이정표 보고 내려가 강화향교 앞에서 오늘의 코스를 마무리하였습니다. 오늘 걸은 거리는 8.4km, 늦은 시간 택시 콜, 즉시 배차되어 터미널로 돌아와 (요금 5,600원) 18:14분 3000번 버스에 승차 송정역에서 5호선 환승, 귀가하였습니다. 
 
글번호 1048
 
 
참조:

강화나들길1코스 심도역사문화길(강화터미널-동문-고려궁지-강화성당-충혼탑-터미널)

https://eensuh.tistory.com/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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