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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령 원범과 강화 소녀 봉이의 데이트 코스는 약수터 (청하약수터 - 찬우물약수터)였습니다.

 

이원범은 맏형의 역모에 연좌되어 14살에 교동도로 유배되었다가 강화도로 옮기게 되었는데 강화 소녀 봉이를 그때 만난 것으로 추정되네요. 개인적인 추정입니다. 열아홉에 인생 역전되어 왕으로 등극해서 한양으로 떠날 때까지 봉이와의 만남은 계속되었을 것으로 그 또한 추정일 뿐입니다. 24대 헌종의 뒤를 이을 25대 왕(철종)으로 추대될 때까지 원범은 귀양살이하는 초립동 소년에 불과했었고 강화도령이라는 애칭은 후대에 만들어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원범의 첫사랑에 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는 야사에 전해지는 구전인지, 아니면 어디에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인지는 오늘 코스에서 찾아볼 수 없었으나 강화도령이라는 영화와 드라마로도 제작 방영 되면서 풋풋한 첫사랑 이야기로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하였던 것을 보면 픽션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조선 말기의 정치적 혼란과 소용돌이 속에 철종은 32세에 붕어하게 됩니다. 

 

오늘은 당시의 그런 복잡한 정치적인 이야기들을 따라가 보는 것이 아니고 소년 원범과 소녀 봉이의 풋풋한 첫사랑 데이트코스를 조용히 따라가 보는 도보여행입니다. 소년은 청하동 잠거(임시 거처, 등극 후 용흥궁으로 개축)에서 해서 청하동 약수터에서 봉이를 만나 찬우물 약수터를 오갔을 것으로 보이죠. 찬우물 약수터에서 외가까지는 10리가 안되지만 봉이와 함께 다시 청하동 약수터로 되돌아갔을 것으로 보입니다. 첫사랑길이라 해서 훈훈한 이야기로 기대가 적잖은데, 오늘 코스에서는 그런 풋풋한 이야기들이 확인되지 않아서 좀 아쉬워요. 청하약수와 찬우물 약수는 음용 적합 판정서가 붙어 있네요. 수백 년간 변함없이 물맛 좋은 약수로 이어오는 것이 경이롭습니다. 중간에 장대가 있어 병졸들이 지키고 있었지만 비록 왕족이긴 하지만 귀양살이 신분에 장대는 피해 다녔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도 순전히 개인적인 추측입니다. 

 

강화도령의 훈훈한 첫사랑의 길을 따라가 봅니다. 

 

용흥궁 

 

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 귀양살이로 거처했던 민가, 초가집을 기대했는데, 아쉽게도 간 곳 없고 용흥궁이 들어섰네요. 철종 4년에 강화유수가 지금과 같은 건물을 짓고 용흥궁이라 하였다는 설명입니다. 임시 거처했던 터라는 의미가 남아 있네요. 궁이라 했지만 행궁으로 보긴 어렵고 종로에 있는 운현궁과 비슷한 살림집 형식이긴 하지만 규모가 그보단 작아 보입니다. 

 

소슬문으로 들어가면,

 

잠저구기비각입니다. 잠저(暫邸)는 왕이 즉위하기 전 거주하던 사저를 말하고, 구기(舊基)는 옛터라는 뜻이죠.  

비각 안에 비석에 새겨진 글씨가 잘 안 보이는데, '잠저구기'로 새겨져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철종이 등극 후 이곳 용흥궁에 들려서 묵었던 기록이 있는지 궁금했지만 설명이 없네요. 

해설사와 함께하면서 물어보는 게 좋겠습니다. 

 

 

용흥궁을 둘러보고 첫사랑길 코스 따라 진행하는 이정목,

사각 말뚝에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표시해 놓은 화살표 표시가 정성스럽죠. 

 

도심을 벗어나는 구간에 복잡하지만 요소요소에 리본이 부착되어 있어 길안내는 만족스럽네요. 

 

마을길을 벗어나 골목으로 진입, 이어지는 산길에는 며느리밑씻개 분홍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붉은 물봉선도 함께 흐드러지게 피어 있습니다. 꽃길을 따라 걸어내려가면 청하약수터입니다. 

 

청하약수터 

 

이 자리에 강화도령이 찾아다닌 당시의 약수터 모습은 짐작이 안 가지만,

 

수백 년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샘이 무너지지 않고 수질검사 결과 음용적합인 것이 경이롭기만 합니다. 

 

첫사랑길 안내문입니다.

 

첫사랑길 안내판 뒤로,

 

 

산길을 오르면,

 

거북바위입니다. 누군가가 작은 향로를 하나 올려놓았네요.

 

거북바위에서 잣나무숲길을 지나 오르면, 암문입니다. 

 

암문을 통과해 성곽 따라 올라가도 되고, 이 길은 병졸들이 순성 하던 길이겠죠. 우측으로 잣나무 숲길을 따라가도

남장대에 이르게 됩니다. 강화도령과 봉이는 아마도 잣나무 숲길로 다니지 않았을까 싶어요.

 

남장대 

 

장대는 장군의 지휘소입니다. 2010년에 복원하였네요.

 

고려시대 몽골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축조한 이 산성의 길이는 7km,

 

내려다 보이는 강화의 풍년 들판, 

 

산성 내에 궁궐과 백사의 건물은 개성의 것과 비슷하게 건립하였다는 설명입니다.

 

남장대를 둘러보고 다시 산길로 내려가 복귀, 

 

 

계속 내리막길입니다.

 

산길을 다 내려온 지점에 이정표, 종점까지 아직도 6.6km 남았네요.

 

산길이 끝나는 지점에 에버리치 호텔, 이후는 포장된 길이 이어집니다. 

 

다시 황금 들판을 지나, 

 

좌측에 말끔하게 조성된 선행천 산책길.

이후 이어지는 작은 고개에 혈구산이라는 안내판이 보이네요. 혈구산 자락길을 따라 내려가면 찬우물약수터입니다. 

 

찬우물약수 

 

이 찬우물 약수도 수백 년 변함없는 물맛에 음용적합 판정서가 붙어 있습니다. 주변에는 노점을 차려놓고 이런저런

나물과 채소를 팔고 있는 할머님들이 대여섯 분이나 되네요. 찬우물에서 종점까지는 3.6km 남았습니다.

 

찬우물에서 외가에 가는 길은 큰길 따라 아랫마을길로 가는 모양이다 싶었는데,

 

다시 우측 산길로 진입하라는 말뚝입니다. 그런데 말뚝의 방향이 틀어진 모양이네요. 종점인 외가까지 3킬로 정도

남았을 텐데, 시점까지 6.7km라고 잘못 표시되어 있는데요. 산길은 다시 잣나무 숲길입니다. 

 

2.1km 남았다는 이정표를 보고 이어지는 좁은 아스팔트길을 지나오니, 

 

길가에 쓰러진 말뚝, 직진입니다.

 

또 쓰러져 비스듬히 누워 있는 말뚝, 좌틀합니다.

 

이어지는 농로를 따라갑니다.

저 앞에 가는 어르신이 아는 길 같이 가시겠다고 해서 가면서 이것저것 질문을 해 보았지만 외가가 아흔아홉 칸

부자 염 씨라는 말씀만 답해 주시네요. 

 

철종외가

 

외가 대문 앞에 새워 놓은 첫사랑길 안내판, 옆에는 스탬프함,

 

철종의 외가입니다. 

 

철종 4년에 지었다는 설명이니 즉위 전의 외가 모습이 아니네요.

아까 어르신 말씀대로 99칸의 모습이 어땠는지 궁금하네요.

 

현재 내부 수리 중으로 어수선합니다.

코스를 종료, 오늘 걸은 거리는 10.8km입니다.

 

 

참고로, 스탬프함 위치는,

 

 

시점에 용흥궁 입구, 해설사의 관리실 앞, 종점에는 외가 대문 앞입니다.

 

교통은 외가 대문에서 나와 쭉 직진 400 여 미터쯤에 버스정류장, 

 

'대장간마을' 정류장에서 8분 기다려 48번 군내버스에 승차, 터미널로 복귀, 3000번 버스 타고 이동,

송정역에서 5호선 환승, 귀가하였습니다. 

 

그 외 여유 있으면 둘러볼 볼거리로는,

 

한옥성당

 

한옥성당은 현재 보수 중입니다. 성당 앞 돌담이 다 철거된 모습입니다. 

 

용흥궁공원 입구에 김상용 순절비, 

 

병자호란 때 순절하신 분이십니다.

 

용흥궁 입구에 심도직물 터, 공장 굴뚝, 

 

1947년에 설립, 2005년까지 1,200여 명의 근로자가 종사했던 국내 굴지의 심도직물 터입니다.

 

 

소창(면직물) 체험장은 길 건너가 코스 따라가다 한옥관광안내센터 앞길로 진행합니다. 소창을 직조하던 면직기가 길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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