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이 나고 자란 마을은 춘천 신남면 증리,
금병산에 둘러싸인 고향 마을 모습이 옴폭한 떡시루 같다 하여 증리가 실레마을로 불리며 마을 전체가 유정의 작품 무대였습니다. 지금까지도 전해지는 '점순이' 등 그의 소설 12편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금병산 자락에 조성된 실레 이야기길은 유정과 그의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문학기행의 명소로 꼽히고 있습니다.
스물아홉에 요절한 유정,
그의 숨결이 스며있는 만추의 실레 이야기길을 따라 걸은 토요일 오후였습니다.
도련님, 이쁜이는 물론, 점순이, 덕돌이, 춘호, 응칠이, 응오, 복만이, 덕만이, 근식이, 이렇게 유정의 소설에 등장하는 고향 사람들의 이름만 들어도 정겹습니다. 점순이가 유정을 꼬셨다던 동백숲길에 나오는 동백은 붉은 동백꽃이 아닌 노란 생강나무였습니다.
생강나무와 산수유를 구별할 수 있다면 꽃나무에 대한 관심이 많은 분이죠.
출발은 김유정 역에서부터입니다.
오늘은 만추의 실레 이야기길 걷는 날, 김유정 문학촌은 지나갑니다.
문학촌을 지나 삼거리에 실레 이야기길 안내판을 보고 마을 우측 편을 흘러 돌아 나오는 실개천을 따라갑니다.
전에는 왼쪽으로 마을 외곽길이었는데 바뀌었네요.
마을 한가운데 배추밭은 포기를 다 수확하고 버려진 배춧잎은 그냥 시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배추 내음이 남아 있네요.
졸졸 흐르는 실개천
실개천 따라 데크길도 조성되었습니다.
길가에 어느 집 백구 둘, 왼쪽 녀석은 밉상으로 짖고 있는데 우측 녀석은 순둥이,
반가워하는 표정입니다.
인쇄박물관 왼쪽으로 돌아갑니다.
잔디밭에 놓인 낡은 윤전기, 활자본, 잔디깎이 등이 눈에 뜨이네요.
인쇄박물관을 지나서부터는 종전의 길에 복귀해서, 들판도 지나고, 폐가도 지나고, 길가의 어느 쉼터에는
흘러간 구성진 옛 팝송이 커다란 고물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단풍이 다 떨어진 이 길은 들병이들 넘어오던 눈웃음길이었습니다.
수북이 쌓인 솔잎, 들병이들 모습이 어른거리나요. 들병장수라고도 불리는 들병이는 병에 술을 담아가지고
다니며 파는 장사꾼들입니다.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는 쉼터에 돌에 새겨 세워놓은 '김유정 문학의 현장'에는 이곳이 유정이 산책하며 작품을
구상하던 곳이라는 설명이 새겨져 있습니다.
낙엽 쌓인 산길, 이 길은 금병산 아기장수의 전설이 전해지는 길입니다.
가난한 부부에게 태어난 아기장수는 겨드랑에 날개가 달려 마을 사람들이 아기장수가 태어나면 불길하다 하여
날개를 잘라버려 아기장수는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는 슬픈 이야기입니다.
점순이가 나를 꼬시던 동백숲길
유정의 첫사랑은 점순이였나요..
잠시 배낭 내려놓고 쉬어갑니다.
덕돌이가 장가가던 신바람 길
전망대가 새로 생겼네요, 그런데 올라가지 못하도록 계단 입구를 테이프로 감아 막아놨네요.
복만이가 계약서 쓰고 아내 팔아먹던 고갯길
오후의 햇살이 눈부십니다.
노랗게 물든 낙엽송
고운 단풍은 다 졌습니다.
춘호처가 맨발로 더덕 캐던 비탈길
도련님이 이쁜이와 만나던 수작골길
산신각 가는 산신령길을 따라갑니다.
가자 말자 의견이 엇갈리던 네(4) 여성분들,
가자로 의견을 모으고 산신각을 향해 오르막 으슥한 산길을 따라갑니다.
산신각입니다.
금병산을 진병산이라고도 하는군요. 임진란 때 진을 쳤던 곳, 후에 항일 의병들도 진을 쳤던 곳, 이곳 진병산에
산신각을 지어 산산령을 모시고 조상 대대로 주민의 안녕과 마을의 번영을 기원하는 산신제를 매년 3월 길일에
지내는 곳이라는 설명입니다.
내려가는 길은 잣나무길
다 내려왔습니다.
유정이 금병의숙을 지어 야학과 농촌계몽 운동을 벌일 때 심은 느티나무 이야기,
증 1리 마을회관 옆 마을쉼터에 느티나무가 바로 그 느티나무입니다.
김유정 역에서 실레 이야기길 마무리, 오늘 걸은 거리는 6.4km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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