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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과 영화에서 폭군으로 그려진 인물, 조선 제15대 임금(재위 1608-1623), 인조반정으로 폐위되어 강화도로 유배되고, 다시 제주도로 이배 되어 18년간 유배생활을 하다가 제주에서 세상을 떠난 광해군의 묘를 찾아보았습니다.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 외진 산골에 묻혀 있는데 아쉽게도 철망 문이 굳게 닫혀 있네요. 사적 훼손 방지 및 문화재 가치 보존을 이유로 문화재 보호법 제48조에 따라 공개제한으로 지정되어 2013년 1월 1일부터 2022년 12월 31일까지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사릉천(경춘선) 자전거길을 타고 달리다 사능교 넘어가 석화촌 가는 방향으로 마을길을 찾아가야 하는데 광해군묘 길안내 이정표가 안 보이네요. 검색해서 내비 띄우고, 경로 따라 동네 골목길을 타고 올라갔습니다..

 

가는 길에 석화촌에 들려 정원에 핀 가을꽃들을 찾아 사진에 담으려 했는데 오늘 휴무인가 보네요, 문이 닫혀있습니다. 석화촌을 지나 마을길을 계속 타고 올라 마을 끝에 다다르면 축사, 우사들이 보이면서 향기롭지 못한 냄새가 배어나 풍기고 있는 동네 입구에 자전거 거치시켜놓고 길 없음이라고 써붙인 작은 다리를 건너 동네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마을 입구 다리 난간에 써붙인 '길 없음 출입금지'는 차량용 주의 안내문. 

 

내비 보고 경로 따라갔더니 어느 우사를 가로질러 가도록 뜨네요, 다가가니 소들이 사람 구경하는 듯, 다 쳐다봅니다.

 

길은 없어지고 우사들이 없어진 길 위에 눌러앉아 있는 것인지 내비가 오류를 보이는 것인지 길이 막혀 우왕좌왕 하다가 우사 관리인이 가르쳐준 산길로 돌아 올라가 영락교회 공원묘원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가파른 오르막 길가에 광해군묘 길안내 화살표가 보입니다.

 

오르막길을 올라와서 돌아보니 경사도가 25%나 되네요.

 

영문으로는 King이라고 썼네요.

 

철망 문은 닫혀 있고 2022년 12월 31일까지 공개 제한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습니다. 일반에게 비공개되고 있다고는 들었는데 아직까지도 공개되고 있지 않네요.

 

적자가 아닌 서자로 태어난 그는 부친 선조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다가, 임란 중에 서둘러 왕세자로 책봉되어, 선조가 피난을 가면서 분조(왕을 대신하는 조정의 분소)의 책임을 맡아 왜적에 적극적으로 맞선 왕세자, 전란이 끝나면서 대북파의 지지를 받아 어렵게 왕위에 올라 전후 복구와 대동법의 시행 등 개혁을 추구했지만 명과 후금이 세력을 다투는 당시 국제정세 속에서 국내의 당파싸움에 휘말려 폐모살제(廢母殺弟)를 이유로 선조의 손자인 능양군을 앞세운 반정세력(서인세력)에 무너지면서 임금의 자리에서 퇴위되는 비극적인, 몰락한 폐주 광해군을 간략히 소개하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습니다.

 

당대에 버림받은 군주, 현재에 개혁군주로 재조명되는 인물, 후금의 세력이 커지면서 당시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실리와 중립외교로 풀어가려던 지략을 국내의 당파싸움에 휘말려 왕권을 펼쳐보지 못하고 퇴위된 폐주, 요즘 우리 시대의 탄핵정국이 되새겨지기도 합니다.

 

송림 사이로 봉분이 보이는데, 왕자묘제(王子墓祭)의 형태로서 군왕의 능침으로는 어울려 보이지 않는데요.

 

군부인 문화 류 씨와 합장되어 있습니다.

 

산아래를 내려다보니 높고 험준한 산등성이에 묏자리를 잡았는데 그래도 연산군 묘역에 비해서는 규모가 상당히 크네요.

 

왼쪽으로 가면 다시 묘원이어서 성묘차량들이 가끔 지나갑니다.

 

묘역에서 돌아내려 와 마을 입구에 거치시켜 놓았던 자전거 타고 사능교-사릉천-왕숙천을 달려 귀가하였습니다. 돌아오는 길, 구리한강공원 코스모스 자전거역 들판에 금년엔 메밀 꽃씨를 뿌려놓았군요, 지금 '소금을 뿌린 듯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어 영상으로 담았습니다.

 

[영상] 구리한강공원 메밀꽃밭 영상입니다.

 

 

광해군 묘역을 걸어서 올라갔다 온 거리는 2.5km, 왕숙천-사릉천(경춘선)을 달린 라이딩 거리는 49.1km(feat. 모토벨로 TX8프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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