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산터미널에서 내려 찾아보아도 영남길 안내판은 안 보이고, 제8길 끝나는 지점과 제9길 시작점이 어딘지 애매합니다. 터미널에서 왼쪽, 택시승차장을 끼고 좌회전 조금 가면 사거리, 다시 좌회전, 직진, 죽산교 앞에 영남길 이정표 보이고 코스에 진입하게 됩니다. 왼쪽에 실개천 따라 드넓은 들판길을 걸으며 보면 왼쪽 멀리 죽주산성이 크지 않아 보입니다. 산성을 걸을 때는 성곽이 작지 않아 보였는데 멀리서 보니 작아 보이네요. 저 작은 성을 지키기에 사력을 다할 수밖에 없었는데, 몽고군은 저 작은 성을 뺏기 위해 총공격을 하다가 어찌 패퇴를 하였을까, 새삼 송문주 장군의 지략이 돋보이기도 합니다.
들판 너머에 죽주산성이 조그맣게 보입니다.
오늘은 끝없는 들판길이 예고되는 듯합니다.
한참을 가다 뒤돌아보아도 죽주산성이 계속 따라옵니다.
그런데 들판길에서 이상하게도 비릿한 갯벌 냄새가 배어 있는 듯하네요..
죽산성지에 들어섰습니다. 이곳이 죽주산성을 공격하기 위해 몽고군이 진을 쳤던 곳이라 하네요. 그래서 이진(夷陣)이라 불리었다고 합니다. 그런 곳이 병인박해(1866) 때 순교자 사형장이 되었고 거기 끌려가면 죽은 사람이니 잊으라 하여 잊은 터로 불리게 되었다고 하네요.
십자가동산
순교 사형장의 사연들을 돌판에 새겨놓았습니다.
돌판에 새겨진 '죽산에 한 옛날에'라는 글을 그대로 옮깁니다. "죽산에 한 옛날에 천주학 신봉자들 산 살이 찢기고 뼈골이 부러져도 은공의 주님사랑 세세에 전하고자 수없는 고통 속에 목숨을 사루었다 많다던 포졸들은 이제는 간데없고 은총의 신도들이 성전을 이루고 선조의 선교정신 만세에 현양코져 조용히 외람진 곳 외로이 불탔어라 들어라 산과 들아 모두 다 설워말라 신도들이 옛일을 변호코자 피맺힌 옛 성터를 꽃으로 단장하니 로서아 찬바람은 봄빛에 물러갔다 써서도 혀로 써도 형언키 어려운 삶 믿음을 목숨보다 귀하게 여겼으니 음성을 다해서도 찬양키 부족하다 을병정 셈을 세도 무궁히 세야 하리 증거자 순교자는 천상에 오르시어 거룩한 주님 앞에 영복을 누리시니 한없는 부러움에 우리는 사로잡혀 땅 위에 무릎 꿇고 간절히 비나이다"
프랑스 선교사 뮈텔이 기록한 치명일기(致命日記)와 증언록에 이름이 오른 순교자만도 25분이나 된다고 합니다.
순교자 김도미니꼬는 박해를 피해 숨어 지내는데 어느 날 마을 사람 10여 명이 찾아와 열일곱 살 난 딸을 내어주지 않으면 포졸을 데리고 와 가족을 몰살하겠다고 위협해 하는 수 없이 딸을 내어준 사연에서 보듯이 이렇게 인간으로서는 감당키 어려운 모욕과 고난을 당하면서도 신앙을 고수하다가 순교의 길을 걸어가기도 하였습니다.
대성전(大聖殿)
당시 상황으로 보아 사연이 밝혀진 순교자 이외에도
수많은 신도들이 끌려와 처형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제3처 예수님께서 기력이 떨어져 넘어지심을 묵상합니다.
제1처 예수님께서 사형선고를 받으심을 묵상합니다.
제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심을 묵상합니다.
여기서 조금 더 가서 십자가동산 우측에 잊은 터 안내판과 함께 스탬프함 서 있습니다.
오늘의 제9길 코스를 성지순례길이라고 했지만, 전 코스가 오르막 내리막이 없는 들판길을 걷는 평지길인데 축사, 특히 우사가 많아서 축산농원들판길이라 해도 될 것 같아요. 오늘같이 무덥고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는 날, 7월의 폭염 속에, 나무그늘이 없는 들판길을 걷는 건 많이 지치게 하네요. 중간에 편의점 딱 한 곳 있습니다. 생수 준비 충분히 해야 하겠습니다.
드넓은 들판길, 조용한 들판길, 전원 속의 풍경이 펼쳐지고,
전원 속의 풍경은 평화스럽고 아름답죠. 그런데 그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즐기려 하는데 코를 막아야 해서 고통스럽습니다. 악취가 엄청 심한데요. 오늘같이 푹푹 찌는 더운 날에 특히 돼지 돈사 그 지독한 악취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네요. 그런 어려운 환경에서 축산업을 하시는 분들 정말 고생이 많으세요. 악취는 들판길에 계속 따라옵니다.
더워서 소들도 바닥에 엎드려 쉬고 있습니다. 일죽 들판으로 이어지면서는 흥미로운 이야기 안내판들을 만나게 됩니다.
며느리의 소원을 이뤄준 갓바위입니다. 장암리에 금망아지골이라는 마을에 부잣집이 있었는데 그 집 며느리는 손님을 대접하느라 손에 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스님이 시주를 하러 이 집에 들렀는데 며느리가 스님을 극진히 대접하여 하루 묵을 방을 내주기까지 하였습니다. 다음날 스님이 고마운 마음에 소원을 하나 말해보라고 하니 며느리는 손에 물이 마르게 좀 해 주십시오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스님이 살펴보니 집 앞에 커다란 바위 위의 갓모양이 이 집 부의 원천이라고 생각되어 자 바위 위의 갓모양이 재앙의 씨앗이니 갓을 떼어내 땅에 묻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갓 모양의 바위가 사라지고 나니 집이 망해 손님이 찾아오지 않아 며느리의 손에 물이 말랐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흥미로운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며느리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것이 부잣집 집안이 망해버리는 일이 벌어졌는데 그렇게 해서 며느리 손에 물이 말랐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름다운 이야기로 보기는 어려운데요.
일죽면 장암리 송산마을과 광천마을에 집성촌을 이루며 살았던 삼대를 이어 효자 효부가 나온 효자 가문 현풍 곽 씨의 충효각입니다. 광천마을 대사골에 곽사문이 개설한 서당에서 축지법을 배운 임경업 장군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나라를 위하여 큰 공을 세울 인물됨을 알아본 곽사문이 축지법까지 전수해 주니, 어느 날 곽사문 스승의 생신을 맞이하여 메추리를 넉넉하게 잡아 생신날 아침상에 올릴 수 있도록 축지법을 써서 단숨에 충주에서 달려오기도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상큼한 청포도밭입니다. 축산 농원의 악취가 사라져 더 상큼해요.
배밭을 지나 제9길 종점인 일죽면 금산리가 멀지 않습니다. 그 런 데 냄새나는 축사가 또 나타납니다.
오늘은 제9길과 영남길 마지막 구간인 제10길을 이어서 완주하여 최종 목적지는 어재연 장군 생가입니다. 제9길(금산리 버스정류장까지) 걸은 거리는 삼성헬스(gps) 상으로 12.3 km, 제10길(어재연 생가까지)은 12.0km, 합하여 오늘 걸은 거리는 24.3km 되네요. 출발 교통편은 동서울->죽산 시외버스(6,400원)인데, 토요일 중부고속도로 정체로 90분이나 걸렸습니다. 제9길 포스팅은 여기서 마치고, 나머지 구간을 제10길 포스팅으로 따로 올리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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