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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코스는 화려한 고려문화의 향기, 죽주산성길입니다. 영남길 제8길로 백암면 석천리 황새울입구에서 출발해 죽산터미널까지의 코스입니다. 시작은 오르막 내리막이 없는 들판길을 걸으며 조용한 농촌풍경을 즐기다가, 이렇게 편한 평탄한 길이 오늘 코스의 거의 절반이 넘는데, 나머지 6 km 코스는 가파른 비봉산 숲길을 힘들게 오르내려 산성에 이르러, 죽주산성을 살펴보고 죽산으로 돌아오면서 옛이야기들을 더듬어보는 역사문화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구름은 잔뜩 끼어 있는데 햇볕은 따갑고, 들판에 그늘이 없는 지루한 길일 수 있지만 푸르게 자라는 벼포기, 벼포기 사이로 숨어 다니는 개구리, 논 한가운데 배곯은 듯한 백로들, 들판에 하얗게 피어 살랑거리는 개망초꽃으로 농촌풍경이 아름답게 그려지고, 길가에 지나면서 보이는, 당도를 채워 익어가는 배나무, 사과나무, 복숭아, 밭에는 참외, 수박, 토마토, 모두가 보기만 해도 마음이 풍성해지는 풍경입니다. 논두렁에 양수기 모터 소리, 시끄럽지 않은데, 멀리서 뻐꾸기 울고, 산길에서 갑자기 후다닥 날아가는 꿩, 부스럭 뛰쳐나가는 고라니, 길손이 더 놀랬습니다.

 

황새울입구에서 율곡천 따라 농로(삼백로)를 걸어오다 뒤돌아 보니 조비산의 빼어난 자태가 눈을 사로잡습니다, 아쉽게도 구름이 잔뜩 끼어서 또렷한 모습은 안보여주네요. 걸어오다 4 km 쯤 지난 지점에서 뒤돌아보니 조비산이 더 크고 가까워 보이네요, 착시현상이죠, 아무튼 작지만 명산입니다.

 

농로를 따라오면서 보니 논마다 양수기 틀어놓고 물을 대고 있습니다. 가물어서 그렇죠. 전신주마다 콘센트함을 설치해 놓아 들판에서도 전기를 쓰기 편하게 되어있네요.

 

내장리 마을풍경입니다.

 

옥수수밭, 아직은 뽀얀 수염입니다.

 

들판에는 파밭이 많은데..,

 

토마토, 아직은 파랗고..

 

먹음직스러운 꿀참외,

 

이 수박은 곧 따게 될 것 같은데요,

 

내장리 산자락, 허름한 이 집엔 들꽃이 많이 피어 있는데, 곧 쓰러질 듯,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폐가)인가 봅니다.

 

범고개길을 넘어와 농로를 따라 계속 걸어갑니다. 계속 그늘이 없는 땡볕 길을 걸어오다 보니 언제 산길로 접어드나 기다려지기도 하네요.

 

지통암으로 올라가는 아스팔트길, 이맘때쯤 어느 산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칡넝쿨이 온통 뒤덮고 있습니다. 칡의 향기가 바람결에 은은하지만, 나무들은 넝쿨을 덮어쓰고 괴로울 거예요. 물가에 무성한 단풍나무잎 돼지풀도 나무를 타고 올라가 결국 그 나무를 고사시키는 폐해를 주는 유해식물입니다.

 

법상종 지통암입니다.

 

절 마당을 정원처럼 아기자기하게 가꾸어 놓았네요.

 

이 절을 지키는 견공, 네눈박이, 반은 반가운, 반은 경계심을 보이는 눈치입니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사찰, 풍경소리만 바람에 날리고 있습니다. 지통암을 지나 야자매트길을 오르면 죽산면 6km 이정표가 보이고, 여기서부터 비봉산 산길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한 200 여 미터쯤 가서 갈림길이 나오는데 산속 길림길에 길안내표시가 없어 당황, 왼쪽으로는 가파르게 올라가는 길이면서 넓고 사람이 많이 다닌 흔적이 보이는 길, 오른쪽으로는 길이 흐지부지한 평지길, 일단 오른쪽길을 선택해서 가보니 약간 내리막길로 이어지는데 후속 길안내 리본이나 화살표가 안보입니다. 아니다 하고 원위치, 왼쪽으로 힘들게 올라가 보니 얼마 안 가 길이 없어지면서 흐지부지되고 길안내 표시는 물론 안보입니다. 아니다, 이 길은, 하고 다시 원위치, 오른쪽으로 아까 갔던 길을 더 많이 따라 내려가보니 벤치가 하나 보이네요. 이 길이 맞는가 보다 하고 벤치에 다가가 보니 영남길 안내 화살표가 붙어있네요. 반갑기도 했지만, 왜 있어야 할 갈림길에는 리본을 안 달아 놓았을까 이유가 뭔지 따져보고 싶습니다. 아무튼 조금 더 가니 나뭇가지에 리본도 달려 있습니다. 그늘이 없던 농로길을 벗어나 숲길을 걷게 되니 그늘 속에 산내음이 상큼합니다.

 

비봉산 정상 500 m 전방부터 오늘의 난코스, 가파른 오르막길, 로프 잡고 오르는 숨차고 힘든 구간입니다. 그렇게 해서 오른 비봉산 정상(372m)에는 운동기구도 있네요.

 

비봉산 정상, 벤치 2, 평상 1, 돌무덤 둘 뿐, 정자가 있으면 좋을 텐데.. 비봉산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 가파른 내리막, 로프 잡고 내려가는 조심스러운 내리막길이 1km 도 넘게 계속됩니다. 오늘의 제8길 코스난이도를 높게 잡지는 않은 것 같은데, 농로를 걷는 평지길이 이어지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비봉산 정상을 오르고 내리는 구간은 난이도 최상급이네요. 그러다 눈앞에 돌을 쌓은 산성에 이르게 됩니다.

 

죽주산성에 오르고 있습니다. 몇 년 전 자전거 메고 올라갔던 산성, 이포보에서 가까운 여주의 파사성을 보는 듯합니다.

 

아, 저 위 이정표 옆에 스탬프함이 있겠지 하고 기대가 큽니다. 그런데 다가가 보니 없네요, 산성에 있다고 했는데, 해서, 산성 따라 내려오면서 계속 두리번거립니다.

 

북문 방향

 

북문지로 가는 길입니다.

 

남문지로 가는 길입니다.

 

죽주는 죽산지역의 고려시대 지명으로 영남길 교통의 요지였습니다. 이 성은 죽주성 또는 매성으로 불렸으며 몽고군과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곳으로 성벽은 내성, 중성, 외성의 3중 구조로 되어있는데 외성만이 원래의 성벽이 많이 남아 있고 내성과 중성은 유실이 많아서 보수를 많이 해 놓은 상태이지만 하부구조는 삼국시대 모습이 상당 부분 남아 있다고 하네요.

  

고려 고종 23년(1236) 몽고군이 이곳 죽주산성에 이르러 고려군에게 항복을 강요하면서 공격하였으나 죽주방호별감 송문주 장군이 막아내 성을 지켜냈습니다. 송문주 장군은 일찍이 구주성 싸움에서 몽고군의 공격법을 알고 미리 대비하였기에 이길 수 있는 전투였고, 백성들은 그를 신명(神明)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성안에는 송문주 장군의 전공을 기리는 사당이 있습니다. 송장군 묘비명에는 몽고군이 죽주산성을 둘러싸고 물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전술을 쓰자 장군은 멀리서 왔으니 어찌 배고프지 않겠는가 삼가 이 생선으로 군량을 삼으라 하며 연못의 잉어를 잡아 적에게 보내자 이에 물이 많다는 것에 크게 놀라 물러가니 뒤쫓아 물리쳤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발굴조사결과 성 안에는 집수시설이 많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죽주산성이 예로부터 물이 풍부한 성이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라 하겠습니다. 오누이가 힘겨루기로 죽주산성을 쌓았다는 전설도 전해지고 있으나 그저 흥미로운 전설일 뿐, 오누이 둘이서 일주일 만에 성을 쌓을 수는 없는 일. 성의 둘레는 1,688 m, 높이는 2.5 m.

 

포루 위, 오동나무 한그루가 멋스럽습니다.

 

이 포루를 돌아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동문입니다. 계단 끝에 신출귀몰한 장군 신명 송문주 장군 안내판 옆에도 스탬프함은 안 보이고, 동문(석문) 돌에 붙여진 영남길 화살표를 보고 나가 동문 앞에 죽주산성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데 그 옆에도 스탬프함은 안보입니다.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주차장, 화장실 앞에 관광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오누이가 힘겨루기로 쌓은 죽주산성이라는 이야기 안내판이 있는데 그 옆에도 스탬프함은 없습니다. 이제 죽주산성을 뒤로하고 차로를 따라 내려가, 차량들이 질주하는 대로변 죽주산성 입구입니다. 육교도 보이고 성은사(成恩寺)라고 새긴 큰 바위(입석) 앞에 죽주산성 안내판이 있고 드디어 그 옆에 스탬프함 보이네요. 역코스로 죽산에서부터 시작해 올라가면 쉽게 눈에 뜨이는데, 산성 북문 쪽에서 내려오면서는 계속 두리번거리게 됩니다. 스탬프함 위치를 죽주산성이라 해놓으니 산성 어디엔가 있겠지 하고 찾게 되잖아요. 스탬프함 위치를 죽주산성(매신 리 쪽 입구)라고 해놓으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스탬프 찍고 매신리를 지나면서 여러가지 이야기 안내판을 보게 됩니다. 한평마을 이야기, 밥에는 바위가 들고 국에는 구렁이가 들었던 제삿밥 이야기, 두려움을 없애고 소원을 들어주는 태평미륵 이야기들 모두 흥미롭습니다. 그중, 미륵이야기를 한번 보죠. 안성에는 특히 미륵이 많아 미륵의 고장이라고도 불렸다고 하네요. 안성에 약 16구의 미륵이 분포하는데 그래서, 전국에서 가장 많아 미륵의 도시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매신리 석불입상은 무심코 못 보고 지나쳤는데요, 몽고군의 침략을 물리친 송문주 장군과 김윤후 장군의 명복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라고 하여 이를 태평미륵이라고 합니다. 태평미륵의 수인(手印)을 보면 오른손은 시무외인(施無畏印), 왼손은 여원인(與願印)을 하고 있는데 이는 모든 두려움을 없애고 소원을 들어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태평미륵을 찾고 있다고 합니다. 미륵불의 돌을 갈아먹거나 삶아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말도 전해지는데, 실제 미륵불 허리에 돌을 떼어낸 흔적이 남아있다고 하니 참 흥미롭습니다.

 

죽산 면사무소 방향으로 가는 길에 경기도 유형문화재 89호 당간지주(幢竿支柱)입니다. 당은 부처와 보살의 공덕과 위신을 나타내는 깃발이고, 간은 당을 거는 장대로, 이곳 죽산리 당간지주는 현재 위치에 쓰러져 있던 것을 1980년에 바로 세워놓은 것입니다. 높이 4.7m,

 

이곳 봉업사 터에 남아있는 보물 제435호로 고려시대의 오 층 석탑입니다. 봉업사는 태조 왕건의 영정을 모신 사찰이었는데 조선초기에 폐사되었습니다. 참조 <영남길 이야기 안내판 죽주산성, 태평미륵, 당간지주, 오층석탑> 

 

죽산터미널에서 트레일링을 마치고 오늘 걸은 거리는 15.5 km입니다.

때마침 들어온 동서울행 직행버스(6,400원), 19:56분 탑승, 21:00 동서울터미널 도착.

출발 교통편은 남부터미널->백암(5,100원), 택시->황새울입구(8,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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