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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다리 누리길은 고양누리길이면서도 스탬프 투어코스에 포함되지 않아서 아무래도 관심이 덜하게 되고 덜 찾게 될 텐데, 왜 15코스로 승격(?)되지 않았을까 궁금해하면서 오늘 배다리 누리길을 돌아보았지만 궁금증은 풀리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고양누리길 제15번 스탬프 투어코스로 손색이 없어 보이는 숲 속 오솔길입니다. 녹음이 우거진 한여름에 이 숲 속 길의 진가를 알아보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싱그러운 숲 속 길인 것만으로도 좋은데, 코스 따라 볼거리가 많으면 더 좋겠죠, 코스에 얽힌 이야깃거리가 많으면 그 또한 좋은 길이죠. 배다리 누리길엔 볼거리보다는 이야깃거리가 많은 길입니다.

 

원당역 2번 출구에서 19번 마을버스로 이동, 주교동 행정복지센터(주민센터)에서 하차, 걷기 출발하였는데 주변에 누리길 안내판이나 이정표가 안 보여서 조금 당황스럽습니다. 그대로 직진 한 200여 미터쯤 가면 사거리에서 좌회전, 거기에 배다리 누리길 안내판이 세워져 있습니다. 전 코스에 리본은 하나도 안 달려 있네요. 길은 외길이지만 요소요소에 길안내(화살표) 표시목은 세워져 있습니다. 옛적에 한강물이 여기까지 들어와서 이 마을에서는 배로 다리를 놓은 배다리를 건너 다녔다고 하는데 지금은 주위를 둘러보아도 한강물이 흘러 들어왔었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주교(舟橋)는 우리말 배다리를 한자표기한 것이죠. 배다리공원에 무슨 다리가 있겠지 했었는데 그런 건 없고 풋살구장, 인라인 트랙, 놀이터 등을 갖춘 근린공원입니다.

 

공원에 유럽풍의 풍차, 수많은 색색의 바람개비, 푸른 하늘,

배다리공원에 유럽식 풍차가 눈에 띄는 것은 고양시와 네덜란드의 '헤르휘고바르드'시가 자매결연을 맺은 지 13년 된 기념으로 이 공원을 조성했기 때문입니다.

 

풍차 뒤 수많은 색색의 바람개비

이 공원의 조성으로 양 국가 간 우호를 증진하고, 공원을 찾는 고양시민 및 어린이들에게 네덜란드에 대한 이해를

키우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하네요. 놀이터에는 지금 신나게 놀고 있는 어린이들이 해맑게 웃고 도란

도란 떠드는 소리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풋살구장은 텅 비어 있어요.

 

키 큰 송림길

산길에는 참나무도 많지만 키 큰 소나무 숲이 훨씬 더 많아서 한여름에 소나무숲길이 이루는 나무그늘 터널이 기대

되는 아주 걷기 편한 오솔길-흙길입니다. 산악자전거 2대가 목례를 하면서 휙 휙 지나가고 이곳 산길을 걷는 분들도

여럿 지나갑니다.

 

소나무 숲길

길은 숲 속길과 황톳길, 군 순찰로, 철책길, 산책길, 논길, 밭길, 공원길로 이루어져 있어 지루하지 않게 이어지는

마을길입니다. 산길로 접어들면서 박용관 옹의 묘소를 만나게 되는데, 1961년에 자신의 소중한 재산인 임야 3,887평을 

희사하여 서울 을지로 6가에 있던 고양군 청사를 지금의 고양시 덕양구 주교동으로 이전할 수 있도록 계기를 만들어

애향정신으로 향토발전에 큰 공을 세우신 분으로, 원당국민학교 부지 2천평, 덕양구 보건소 부지 600평도 희사하였다고

소개되어 있네요. 

 

산불예방 현수막

네.. 산 사랑의 시작은 산불예방입니다.

 

참나무 숲 사이로 꼬불꼬불 지나가는 오솔길

조선조 영조 연간, 1755년 고양 군지에는 원당면 이패리에 박재궁촌이 기록되어 있는데 현재 능골에 있는 밀양 박 씨 재실이 마치 궁과 같이 크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런데 코스를 벗어나  박재궁촌을 찾아가는 길 안내가 잘 안 되어 있는 것 같네요. 아까 배다리공원을 지나올 때 교통표지판에도 박재궁 안내가 되어 있었고 들판 사이에 농수로 같이 좁은 실개천에도 박재궁천이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어 박재궁이 궁금하기도 했었는데요. 배다리 마을은 지리 교통상 고양시의 중앙에 위치하여 1963년 고양군청(현 시청)이 이전하면서 고양 행정의 중심지가 되었고, 넘말은 주교동 주민센터에서 시청 방향에 있는 마을로 시청 너머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이작골도 있는데, 원당초등학교 정문에서 원능역 방향에 있는 큰 마을의 이름입니다. 이렇게 누리길 따라 여러 마을이 이어져 배다리 누리길을 마을길이라고도 하는군요.

 

대궐 약수터, 파란 물바가지 2, 출수구에 거북이 석상,

대궐 고개 약수터입니다. 샘물이 바위틈에서 솟구쳐 넘쳐흐르고 수질이 아주 좋은 생수로서 고려 34대 마지막 왕인 공양왕이 다락골(왕릉골)에 피신해 계실 때 왕과 왕비는 꼭 이 샘물만 드셨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 약수(샘)인데, 최근의 수질검사 결과로는 음용 부적합으로 되어 있네요. 700여 년 전 왕과 왕비 두 분이서 이곳 샘물을 떠 드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기도 합니다.

 

산길에 무너진 듯한 돌무더기

대궐약수터를 지나 송호원 앞에서 가파른 오르막 산길을 올라 만나는 돌무더기입니다.

 

쉼터에 벤치 세 개, 뒤로는 우거진 송림

돌무더기에서부터 내리막 산길을 계속 내려가 외곽순환고속도로 위를 가로지르는 성사 육교를 넘어가 우측 산길을 타고 가면 차돌봉 쉼터에 이릅니다. 쉼터에는 벤치 몇 개와 야외 헬스기구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독곶이와 장터거리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지금의 시청 서쪽 산황동 방향에 있는 자연촌락 마을로 본래는 돌곶이 마을이었는데 발음이 변하여 독곶이로 되었다고 하네요. 장터거리는 시청과 독곶이 사이에 있는 마을로 예전에 장이 서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윗배다리-능골-마상골 이야기로 이어지면서 충신 박충원의 묘 및 신도비를 지나게 되지만 철조망에 가려져 있어 접근이 안됩니다.

 

차돌 바위 두 개, 뒤로는 소나무 숲,

병풍바위입니다. 이 병풍바위 주변에 큰 부자가 살았다고 하는데 문중에서는 병풍바위의 정기로 가문의 영광이 이어진다고 믿어오고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이 부잣집의 하인이 주인에게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게 되었고 그 하인의 아들이 복수를 다짐하며 후에 명 지관이 되었는데 과연 부잣집의 기운이 병풍바위에서 나오는 것임을 확인하고 사람을 사서 몰래 바위를 깨트리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바위가 깨지면서 큰 굉음과 함께 천둥번개가 울렸는데 이후 부잣집의 가세는 점차 줄어들었으며 그 명 지관도 서오릉 능 자리를 잡은 후 벌에게 쏘여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참조 <배다리 누리길 이야기판>

 

마상공원길을 따라 계속 걸어 내려오면 오늘의 출발점이었던 주교동 주민센터 앞으로 나오면서 트레일링을 마치게 됩니다.

오늘 걸은 거리는 7km 되네요. 

 

오늘 걸은 배다리누리길 코스의 이정표 모음입니다. 주교동 행정복지센터 앞 버스정류장은 지금까지 보아온 정류장 중에서 가장 지저분하고 불결해 보이는 정류소가 아닌가 싶어요. 쓰레기 음식물 폐기물 통과 함께 생활쓰레기, 폐가구, 폐기물들이 함께 쌓여 있어서 여름에는 버스 기다리면서 악취가 염려되기도 하네요. 주민센터가 바로 앞에 있으니 좋은 개선 방안이 나오겠지요.

 

아홉장의 사진은 이정표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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