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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 명을 받고 남태령에서 출발, 남행길인 삼남길 따라 내려오시면서 본가(현충사)가 있는 아산에 이르러 그리운 어머님 소식을 묻던 중, 백의종군길에 내려오는 아들을 만나려 불원천리 가쁜 숨을 몰아 쉬는 노쇠한 병세임에도 불구하고 머물고 계시던 전라도 수군진영 여수에서 출발, 배를 타고 시가인 아산으로 오시다가 안흥항 선상에서 운명하셨다는 부음을 듣고 황망히 헤암(지금의 게바위)으로 달려간 오열, 통곡의 길이 오늘 걷는 '효의길'입니다. 헤암은 당시 배를 대던 포구였다고 하네요. 당시에 공께서 달려가셨던 효의길로 추정되는 길에 가장 근접한 길이 오늘 따라 걷는 곡교천 둑방길입니다. 둑방길은 은행나무길이죠. 오늘은 보니 둑방길에 야생화 화분들을 데크길 따라 일렬로 모아놓아 '야생화이야기'길을 곁들여 놓았네요. 야생화 이야기와 함께 은행나무길을 지나 이어지는 둑방길은 늦은 5월의 따스한 오후에 이슬비, 여우비 흩뿌리는 는개비바람 부는 벚나무 가로수길, 길가에는 비맞아 촉촉한 꿀풀 같은 보라색 갈퀴나물이 지전이었습니다. 오늘 코스의 종점인 게바위는 주변이 새롭게 단장되었네요. 
 

신일아파트 입구 삼거리에 이정표

코스의 출발점은 현충사이지만 이미 걸었던 구간은 생략, 온양온천역에서 타고 온 971번 버스에서 현충사 직전 정류장인 신일아파트 앞 정류장에서 하차해 곡교천 둑방길에 바로 진입하였습니다. 지난번 충의길 걸을 때 보아두었던 감림길 삼거리 코너 이정표에 왼쪽으로 게바위 가는 방향이 2구간 효의길이고 우측으로 신일아파트 쪽으로 가는 방향은 이순신 장군의 묘소를 찾아가는 1구간 충의길입니다. 
 

곡교천 은행나무길

곡교천 둑방길(은행나무길)에 야생화 화분들을 일렬로 모아놓아 '사계절 우리야생화 이야기길'을 조성해 놓았네요. 꽃이 피어 있는 화분은 몇 개 안 되지만 모아놓은 야생화들 이름만 불러보아도, 노루귀, 피나물, 깽깽이풀, 동강할미꽃, 돌단풍, 처녀치마, 금낭화, 기린초, 애기기린초, 복수초, 등등.. 정겨운 꽃이름들입니다.
 

정향풀은 하얀 꽃이 예쁘게 피었네요, 이름표에 꽃이야기가 적혀 있죠. 
 

백미꽃
 
다시 이어지는 화분들에 꽃이 진듯, 안 핀 듯한 야생화들은 큰제비고깔, 용머리, 금붓꽃, 애기원추리, 뻐꾹나리, 각시붓꽃, 타래붓꽃, 난쟁이붓꽃, 왜승마, 둥굴레, 개미취, 대청부채, 등등,  
 

새우난초는 노란꽃 한 송이,
 

자란
 
다시 이어지는 야생화 화분들에, 참나리, 용담, 섬말나리, 하늘말나리, 눈개쑥부쟁이, 상사화, 타래난초, 감자난초, 백양꽃, 위도상사화, 단풍취, 진노랑상사화, 마타리, 붉노랑상사화, 제주상사화, 참취, 층꽃나무, 벌개미취, 구절초, 한라구절초, 백선, 병풍쌈, 곰취, 잔대, 해국, 산국, 금꿩의다리, 꽃꿩의다리, 자주꿩의다리, 등등 50여 종이나 되는데요. 야생 들판에서 숨어 발견되는 반가움보다는 감흥이 덜하지만 그래도 잘 모르는 수많은 야생화 모종과 꽃대들을 한자리에서 이름과 함께 알아볼 수 있다는 게 흥미롭네요. 
 

둑방길에서 자전거길로 내려갑니다. 둔치에 노란 꽃과 하얀 꽃이 꽃밭 가득 피었네요. 
 

하얀 꽃은 옥스아이데이지, 노란 꽃은 금잔화,
 

자전거길 좌 우 길 따라 보라색 갈퀴나물꽃이 무더기무더기로 피어있습니다.
 

그런데 예보대로 비가 내리기 시작하네요. 
 

흰색 갈퀴나물꽃도 있네요.
 

파크골프장을 지나갑니다.
 

노란 금계국도 여기저기 무더기무더기로 피었습니다. 
 

아산대교 너머로 보이는 그린타워
 

아산대교 밑 교각에 충무공이 모친의 말씀을 경청하고 있는 모습을 그려놓았습니다.
 

백의종군 명을 받고 한양을 출발, 남으로 내려오면서 1597년 4월 5일부터 4월 19일까지 본가가 있는 아산지역에 머물며 지나간 길을 아산시에서 백의종군길로 조성하였는데 그중 어머님 부음을 받고 헤암까지 달려간 길을 효의길로 조성한 것이죠. 4월 19일 아산을 떠나 합천에 권율장군 진영을 향해 출발하는 3구간은  '구국의 길'로 조성해 놓았습니다. 
 

안내도 중 흰 점선으로 표시해 놓은 길을 장군이 걸어가셨던 백의종군길로 추정하고 있네요, 살펴보니 차로와 많이 겹치네요. 차가 다니는 차로를 피해 설정한 붉은색 선인 곡교천 둑방길이 대체로로 오늘 걷는 코스인데 장군이 직접 밟은 길은 아니지만 원래의 백의종군길에 가장 근접한 길이네요. 역사성, 도보여행의 안전성 등 효의길을 설정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고려를 했겠지만 장군이 직접 걸으셨던 추정(점선)길의 일부는 효의길에 편입해 장군의 발자취를 조금이나마 따라 밟아 볼 수 있도록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상징적이긴 하지만 아쉬움이 남네요. 장군의 슬픔과 고뇌에 효의 정신, 거기에 곡교천의 아름다움을 보태어 함께 걷는 길로 설정, 둑방길을 선택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지금의 둑방길은 2013년경에야 조성된 길이니 당시에는 길이 없는 홍수가 범람하는 하천둔치였겠습니다. 
 

난중일기 중 4월 11일 자 일기에, 고향 본가에 들어오면서 '어머님 생각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라고 심정을 적어놓으셨네요. '금부도사는 온양으로 돌아갔다'라고 한 것으로 보아 동행(호송)하던 금부도사가 관아가 있는 온양으로 잠시 물러났나 보네요. 
 

5분 후 다시 만나는 4월 12일 자 일기에, '어머니 기운이 몹시 약해지셨으나 초 9일에 무사히 안흥에 도착하셨다'는 소식을 적어놓으셨네요.
 

둑방길은 벚나무가로수길로 끝없이 이어집니다. 빗방울이 흩뿌리다 바람이 불다 오락가락하는 는개비 날씨입니다. 
 

모내기는 다 끝난 들판입니다. 저 논밭 들판 넘어에 좌우로 지나는 차로가 장군이 당시에 걸어가셨던 길로 추정되고 있는 길이죠.
 

하얀 찔레꽃도 길가에 무더기무더기로 피었습니다.
 

다시 둑방길로 올라가,
 

곡교리 쉼터 바위에 새겨져 있는 4월 13일 자 일기에는 '어머님 부고를 듣고 뛰쳐나가 가슴을 치며 펄펄 뛰었다, 하늘이 캄캄했다, 바로 헤암(게바위)으로 달려갔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맹사성교 밑을 통과,
 

얼룩소 농장을 지나, 
 

중방포입니다. 헤암에서 어머님 시신을 작은 배에 옮겨 모시고 이곳 중방포에서 내려 수레(상여)에 옮겨 백암 본가까지 운구한 것을 4월 16일 자 일기에 가슴이 찢어진다고 적으셨습니다. 
 

당시에는 포구였던 이곳에 지금은 너른 들판에, 냇물에는 보행교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푸른 하늘이 보이기도 하는데 여우비가 흩뿌려지고 있습니다. 
 

굽어 돌아가는 곡교천,
 

강청 1교 밑으로 통과 직전, 게바위까지 4.9km 남았다는 이정표에는 쓰레기투기장이 되었습니다. 앞에 보이는 화장실은 폐쇄 잠겨 있는데 폐쇄 사유 안내문은 없네요. 
 

4월 14일 자 일기에 '관을 짰다, 재목은 본영에서 준비해 온 것'이라고 적고 있네요. 그러나 금부도사의 재촉으로 충무공은 장례를 남은 가족들에게 맡기고 백의종군길에 서둘러 나서게 됩니다. 백의종군이라 하더라도 전직 관직에 준하는 예우를 하도록 되어 있는 게 당시 예법이었는데, 금부도사만을 탓하는 건 아니지만 모친의 장례마저도 치르지 못하고 떠나게 하다니 조정에서 모친상을 알고도 장례를 치르고 떠나도록 배려하지 않고 남행을 재촉하였다면 당시 상황에 분노케 하는 대목입니다. 
 

강청교 위쪽 강청리에 있다고 하는 치수를 염원하며 풍수지리의 비보차원에서 세웠다는 진청암, 그 안내문이 왜 엉뚱하게 비켜난 이자리에 세워져 있는지 그 설명은 없는데요.
 

강청교 밑으로 통과
 

모내기가 끝난 논에 왜가리가 활개치고 있습니다.
 

이곳은 가야포구였다는 안내문,
 

이앙기가 빠쁘네요, 기계가 자동으로 심어주는 모가 좌 우로 줄이 맞추어 심어지는 게 신기한데요. 
 

이 논은 백로 차지인가 보네요.
 

고사목에 앉아 있는 새는 가슴에 회색 가로무늬가 살짝 보이는 걸로 보아서 맹금류 같은데..
 

무얼 잡는지 낚시꾼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길가에 영글어가고 있는 개복숭, 벌써 시큼 달콤해 보여요.
 

곡교천 1교 밑을 통과, 우틀, 해암리입니다.
 

게 닮아 보이는데요. 게바위 바로 뒤로 지나가는 도로를 성토방식(둑방)에서 교량방식으로 설계변경해 꽉 막혀 답답할 것 같던 주변풍경이 훤하게 트였습니다.
 

옛날에는 강물이 흘러들어 이곳 게바위까지에 배가 드나들었다는 설명입니다. 
 

나라에 충성 바치고자 했건만 죄가 이미 이르렀고, 어버이에 효도하려 했건만 어버이마저 떠나셨네, 
 

어머님이 충무공에게 당부하신 말씀, 대설국욕, '나라의 치욕을 크게 씻어라'
 

모야천지, 어머니는 하늘이시다에서 공은 어머님을 천지로 부르셨네요. 
 

게바위 인근에서 찾은 바위에 새긴 대설국욕, 모야천지는 동국대 노승석 여해연구소 학술위원장이 난중일기에 쓰인 글자를 집자하여 충무공의 친필로 고증하였다는 확인입니다. 작년 4월에 두 바위를 세우며 주변을 새 단장하였네요. 
 
한 300 여미터쯤 마을길을 돌아나가 해암 2리 정류장에 배차시간표를 보니 621번 버스 곧 도착! 굿 타이밍!
바로 들어오는 버스 집어 타고 32분 걸려 온양온천역(정류장)에서 하차, 1호선 환승 귀가하였습니다. 
오늘 걸은 거리는 15.1km입니다.
 
 
글번호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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