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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芙蓉) 꽃 스물일곱 송이로 진 허난설헌(許蘭雪軒) 허초희(許楚姬)의 무덤에 규원(閨怨)과 슬픔이 묻혀 있다.

 

난설헌은 호, 자는 경번, 본명은 허초희(1563~1589), 그녀의 죽음은 병사일까, 자살일까.

당대의 독보적인 여류시인으로 글과 그림에도 뛰어난 조선 제1의 문인으로 꼽히고 있으나, 권문세도가 가부장적인 가풍에서의 억눌린 시집살이 속 질곡의 세월에 규원을 담아 원망과 한탄을 노래하며, 213수의 시문을 남기고 스물일곱(27)에 요절하였습니다. 친정 부모의 갑작스러운 죽음, 가세의 몰락, 남편의 폭음과 기방출입, 시어머니의 미움과 구박, 어린 자녀의 죽음, 유산 등 감당키 어려운 슬픔과 질곡으로 못다 피운 시문학의 열정을 품고 경기 광주 지월리에 묻혀 있습니다.

 

경기광주역에서 내려 청석공원으로 이동, 잠시 둘러보고 개울 건너가 쌍령교를 지나고, 그다음 이어지는 지월리 새마을교에서 내려가 곤지암천 자전거길로 진입, 앞에 우뚝한 무갑산을 바라보며 따라갑니다. 경수교 넘어가면 지월 7리, 4거리 교통표지판에 허난설헌 묘로 가는 안내판이 붙어 있습니다. 그대로 따라가면 안동 김 씨 문중 묘역, 맨 하단에 허난설헌의 묘가 안장되어 있습니다. 허난설헌은 김 씨 문중의 며느리입니다. 

 

청석공원

 

청석공원에서 경안천누리길로 진입하는 진입점을 찾으려 공원을 둘러보았지만

누리길 안내는 안 보이네요. 일단 경안천을 따라가기로 합니다. 

 

개울가의 돌색깔이 푸른 청색바위가 있던 곳을 상징하여 공원 이름을 청석공원으로 붙였다는 설명입니다. 

고려충신 일곱 명의 한림학자들이 칠사산에 은거하면서 석양 무렵에 경안천으로 내려와 고려에 대한 그리움과 시련을 달래곤 하였는데 물에 젖은 바위가 유난히 푸른빛을 띠는 것을 보고 청석바위라 불렀다고 하네요.

 

청석공원에서 바라보이는 칠사산, 고려 충신들 일곱(7)이 숨어 지내던 산입니다. 

 

경기광주역에서 청석공원까지 걸어서 2km, 땡볕 속 그늘진 쉼터에서 잠시 쉬어갑니다. 

 

청파 남재호 님의 시 '청석바위'를 쉼터 벤치 바로 옆 안내판에 새겨놓았네요. 

 

 

경은미술관 앞 쌍령교(좌) 지나고, 이어지는 새마을교(우)를 지나 차로에서 계단으로 내려가면 곤지암천 자전거길입니다.

 

곤지암천 자전거길

 

앞에 우뚝한 무갑산을 바라보며 자전거길 따라갑니다. 곤지암천에도 누리길 안내표시는 찾아볼 수 없네요.

 

앞에 보이는 경수교를 넘어가면,

 

지월 7리 4거리, 교통표지판에 허난설헌 묘 길안내 화살표가 붙어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1.4km,

누리길을 살짝 벗어나게 됩니다. 

 

지월리 경수마을

 

경수마을입니다. 버스 정류장 앞에 작은 마트도 하나 있고 이따가 돌아가는 길에 여기서

광주역 가는 버스도 타고 갈 수 있겠네요. 

 

경수마을 표지석이 있는 고갯마루에서 내리막 길 따라 내려가면 운정이네 슈퍼, 정든 식당

간판이 보이죠. 갈림길이어서 길안내 이정표가 있어야 할 자리인데 없습니다. 그대로 오던

길 따라 우측으로 내려가면 내비에 뜬 경로와 점점 멀어지지만 그대로 진행,

 

저 앞 쪽 전신주에 허난설헌 묘 길안내 화살표가 보입니다. 왼쪽 길로 돌아서면 지월2리

마을회관입니다. 길은 외길, 멀리 정자와 신도비가 보여 저긴가 하고  다가가 보면,

 

'안동 김 씨 김홍도 사적비'입니다. 난설헌의 시할아버지가 되는 분이죠. 

 

사적비 옆 정자는 남애정, 남애는 김홍도의 호, 

남애정에서 100미터쯤 직진하면 허난설헌 묘입니다.

 

허난설헌 묘

 

안동 김 씨 문중 묘역입니다. 하단에 난설헌 묘, 

 

난설현 묘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 안내문이 세워져 있습니다.

 

중부고속도로 건설로 인해 1985년에 우측에서 500여 미터 현 위치로 이전되었다는 설명입니다. 강릉 초당마을에서 태어나 천품이 뛰어나고 아름다운 용모를 타고나 여신동으로 칭송이 자자하였다고 하네요. 

 

모선재(慕先齋)

 

모선재는, 남애공 홍도(1524~1557)와 배위, 아들 하당공 첨(1542~1584)과 배위, 손자 서당공 성립(1562~1592)과 배위 양천 허 씨 난설헌(1563~1589)과 배위 남양 홍 씨, 손자 노은공 김정립(1579~1648)과 배위를 모신 사당입니다. 

 

난설헌의 묘, 윗단에는 남편 성립과 배위 홍 씨의 묘, 남편은 둘째 부인과 합장되어 있네요. 상단에는 시할아버지 김홍도와 배위의 묘가 모셔져 있습니다.

 

난설헌 시비(전면)에는 아들딸 여의고서 절절한 슬픔을 담은 시 곡자(哭子)가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자신의 죽음을 암시한 시 '몽유광상산'을 새겨놓았습니다.

 

벽해침경해 청란의채란

부용삼구타 홍타월상한

 

'스물일곱 송이 부용꽃 붉은빛 다 가신 채 서리찬 달 아래에..'라는 시를 마지막으로 남기고 그의 나이 스물일곱(27)에 요절하였습니다. 안타까운 요절에 병사라는 설이 전해지고 있으나 자살이라는 해석도 뒤따르고 있네요. 조선땅에 태어난 것, 여자로 태어난 것, 남편 김성립을 만난 것, 이렇게 세(3) 가지를 평생의 삼한(三恨)으로 가슴에 묻고 살며 원망과 한탄을 시에 담아내었습니다. 

 

2007년에 KBS 다큐멘터리 '왜 조선에 태어났는가-허난설헌'이 방영되고, 

2014년에 MBC '조선이 낳은 여류문인 허난설헌의 삶을 새롭게 조명한 다큐멘터리'가 2부작으로 방영되고,

2020년 KBS 다큐멘터리 역사에서 '허난설헌의 일상과 작품'이 방영되는 등 그녀의 생애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묘비석에는 '증정부인양주허씨지묘'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난설헌의 출생, 가계, 출가, 작품활동, 요절, 시집간행 등을 묘비석 양면과 뒷면에 간략히 새겨 놓았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친정에서 갖고 있는 자신의 시를 모두 태워버리라는 것을 동생인 허 균이 태우지 않고 213수를 갖고 있다가 누이 몰 19년 만에 중국에서 시집을 간행하게 되는 과정도 묘비석 뒷면에 새겨져 있습니다.

 

난설헌 묘 왼쪽에 작은 봉분 둘(2)은 어린 나이에 전염병으로 죽은 자녀들의 무덤입니다.

묘비에는 외삼촌 허 봉이 눈물을 흘리면서 쓴 비문을 새겨놓았습니다. 

 

마을버스 타러 가는 길 - 무갑리

 

허난설헌 묘를 둘러보고 내려와 남애정 앞에서 중부고속도로 밑으로 통과하는 굴다리를 지나, 

 

길 따라 한참을 가면 삼거리, 우측으로 무갑리 쪽으로 진행, 

 

무갑리 마을 입구인 사거리 버스정류장에서 공영버스 3번 승차,

광주역으로 돌아와 경강선 타고 귀가하였습니다. 오늘 걸은 거리는 9.9km입니다.

경안천누리길 잔여구간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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