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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10번 출구 나와 걷기 출발하여 광희문을 지나 남산(목멱산) 구간으로 걸어 올라갑니다. 장충체육관 뒷길로 진입하면 내부순성길을 따라가게 되는데

 

 

왼쪽에는 성곽이 이어지고 오른쪽에는 신라호텔 철재 휀스를 따라가면서 오르막이 심하지 않은 걷기 편한 숲 속 길을 걷게 됩니다.

 

 

이곳에서 내외부 순성길이 만나서 국립극장 방향으로 가게 되고, 여기서부터는 반얀트리 호텔까지 나무데크길입니다.

 

 

내외부순성길이 만나는 이곳에 정자가 하나 있어 잠시 쉬어갈 수도 있고 정자에 올라가 산아래에 펼쳐지는 풍경(한남동)을 조망할 수도 있습니다.

 

 

성곽은 축성시기에 따라 형태가 조금씩 달라 태조(1396) 때의 축성은 산지는 석성, 평지는 토성으로 쌓았다고 하는데 자연석을 거칠게 다듬어 사용한 것이 특징이라고 하네요.

 

 

돌에 글자를 새긴 성돌(각자성석) 유구입니다. 태조 5년 처음 축성하였을 때 감역관을 임명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묻기 위해 도성이 완공된 후 성돌에 새겨 넣은 것으로

 

 

오늘날의 공사 실명제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축성 공사를 담당했던 군부대, 지역, 담당자, 일시 등을 기록한 성돌이 한양도성 곳곳에 남아있다고 하네요.

 

 

자연석을 거칠게 다듬어 성돌을 쌓은 것으로 보아 이 부분은 태조 때 축성된 성곽일부인 것으로 보아도 되겠습니다. 세종조에는 성돌을 옥수수 모양으로 작게 다듬어 사용하였고,

 

 

숙종대에는 가로 세로 40~45cm 정도로 규격화하였고 순조 때는 60cm 정도로 크고 정교하게 다듬었다고 합니다. 참조 <축성시기에 따른 형태 안내문>

 

 

남산공원의 성곽은 최근에 보수(복원)한 구간으로 보이네요. 그래서 말끔하지만 옛스러워 보이기는 덜하죠.

 

 

숭례문으로 이어지는 성곽에 성돌도 크고 정교하게 다듬어 이음새나 틈새도 없이 정밀하게 쌓아 아주 깨끗한데 아무래도 현대적으로 보이죠,

 

 

오늘은 모처럼 공기도 맑고 하늘이 푸르러 전망이 말끔합니다. 지나가는 많은 분들이 이구동성으로 일 년에 며칠 안 되는 맑은 날씨라고들 하면서 하늘을 쳐다봅니다.

 

 

가운데 한남대교입니다. 이곳에서 서서 내려다보며 서울의 아름다움을 마음에 가득 담고 이틀 후 멀리 귀농하신다는 젊은 분, 부디 성공하시기 바랍니다.

 

 

하늘이 맑아 멀리 북한산도 또렷합니다.

 

 

남산타워 버스정류장에서 내려다본 서울 풍경, 동대문방향입니다.

 

 

남산타워

 

 

많은 분들이 여길 찾아와 즐거워하면서 왁자지껄 지나는 분들의 거의 반이 중국인 관광객인 듯하네요,

 

 

남산둘레길 길가 울창한 숲길에 꽃들은 많지 않은데..

 

 

그중에 그래도 진한 황색의 나리꽃이 많이 보입니다.

 

 

시티투어 버스들이 줄지어 올라가고,

 

 

자전거들도 힘겹게 올라가다가..

 

 

완만하지만 계속 오르막길이라서 쉼터(전망대)에서 잠시 쉬어가는 게 좋겠네요. 여기서 저기 멀리 보이는 남산타워 까지는 1 km 정도 더 올라가야 됩니다.

 

 

남산타워 앞마당, 봉수대전통문화 공연장입니다. 검술공연을 마치고 막 들어와 다음 공연을 준비하는 중입니다.

 

 

장창검술 시범을 보여주기 위해 줄지어 나가고 있습니다.

 

 

힘차고 날쌘 검술공연입니다.

 

 

남산공원의 안중근의사 기념관입니다. 견리사의견위수명(見利思義見危授命), 국가안위노심초사(國家安危勞心焦思), 지사인인살신성인(志士仁人殺身成仁)을 돌에 새기고,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 해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 된 의무를 다하며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렀다가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1910년 3월 10일 안중근 의사가 여순감옥에서 정근 공근 두 아우를 면회하고 동포에게 전한 최후의 유언입니다.

 

 

안중근 기념관 앞 공원에 있는 남산 와룡매(臥龍梅)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창덕궁에 자라고 있던 나무를 일본으로 가져간 모목(母木)의 후계목으로 일본의 한국침략에 대한 사죄의 뜻을 담아 400여 년 만에 환국한 뜻깊은 매화나무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도요도미 히데요시의 명령에 따라 조선으로 출병한 다테 마사무네에 의해 1593년 일본으로 반출된 후 1609년 다테가(家)의 보리사(菩提寺)인 마츠시마(松島)의 즈이간지(瑞巖寺)가 중건되면서 본당 앞 양옆에 홍백으로 식수되어 400여 년간 꽃을 피우며 사찰의 유명한 나무가 되었다고 합니다. 사찰의 129대 주지 히라노 소죠 스님이 일본의 침략으로 인해 조선의 많은 피해와 수많은 인명을 살상한 데 대한 참회로 안중근 의사 숭모회에 후계목 반환을 제의하였고 한일 외교통상부의 적극적인 협조로 1999년 3월 26일 안중근 의사 순국 89주기를 맞아 400여 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와 환국식과 더불어 이곳 남산공원에 홍매화 1주, 백매화 1주가 식수되었습니다. 참조 <와룡매 안내문>

 

오늘의 남산(목멱산) 구간의 이정표 모음입니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10번 출구)-광희문-국립극장-남산타워-남산공원-숭례문-서울역(4번 출구)에서 트레일링을 마친, 오늘의 걸은 거리는 9.9 km입니다. 이렇게 해서 한양도성길을 완주하여 숭례문 안내소에서 기념배지를 받았습니다. 도성길 전구간 완주거리는 각 구간의 출발역-도착역까지의 이동거리를 포함하여 30.1 km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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